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은밀한 살인자 PM 2.5

1952년 12월 4일, 런던 시내가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집집마다 난방을 위해 땐 석탄 연기와 이산화황가스가 안개와 뒤섞였다. 바람까지 멎은 탓에 안개가 도심에 갇혀 거대한 스모그로 변했다. 햇빛마저 차단돼 운전자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야 했다. 곳곳에서 충돌사고가 잇따랐다. 도로는 통행 불능 상태에 빠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스모그는 10일이 돼서야 바람이 불면서 겨우 사라졌다.

며칠간의 스모그로 런던 시민들은 호흡기에 치명상을 입었다. 스모그 발생 후 3주 만에 4천여 명이 죽었다. 이후 만성 폐질환 환자 8천여 명이 더 희생돼 총 1만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런던 스모그 사건'이다.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 PM)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세먼지 예보도 일상이 됐다. 대선 후보도 저마다 미세먼지 대책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뾰족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문제가 되는 것은 초미세먼지(PM 2.5)다. 초미세먼지는 입자 직경이 2.5 마이크로미터 이하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머리카락의 150분의 1(0.5 마이크로미터) 만한 입자도 있어, 호흡하면 걸러지지 않고 폐까지 쉽게 침투해 쌓인다. 때로는 혈관을 타고 몸속 곳곳에서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임산부의 경우 기형아 출산 확률이 16%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해 미국 란체스터대 교수팀은 초미세먼지가 사람 뇌 속까지 직접 들어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말 그대로 은밀한 살인자다.

환경부는 중국발 미세먼지, 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등을 주범으로 꼽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자동차 미세먼지가 골칫거리다. 자동차는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가 마모되면서, 또 연료를 태우면서 중금속이 포함된 미세먼지와 배기가스를 배출한다. 특히 디젤 배기가스에는 1급 발암물질인 블랙카본(BC)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기 중에서 유기화합물과 결합해 초미세먼지로 진화하기도 한다.

공장이 없는 도심에도 도로 주변은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높고 피해도 직접적이다. 매일 수많은 차량으로부터 미세먼지와 배기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보행자들은 미세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그 존재도 모르고 들이마신다. 등굣길 어린이, 산책하는 노약자도 예외가 아니다. 공기 질 측면에서 도로변 인도는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1급 발암물질도 코앞에 떠다니는 위험지역이다. 1만2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 스모그 사건도 돌이켜 보면 미세먼지가 그 주범이다.

미세먼지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도시숲 조성을 권한다. 숲이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앞면의 끈끈한 왁스층에 비산먼지를 달라붙게 한다. 또 광합성 과정에서 잎 뒷면 기공으로 초미세먼지를 흡수한다. 나무 47그루 정도면 경유차 1대의 연간 배출 미세먼지(1천680g)를 모두 제거한다. 울창한 가로수는 도로의 미세먼지 확산을 막아준다. 가로수는 천연 미세먼지 필터다.

대구는 녹지비율이 전국 광역시 중 두 번째로 높다. '폭염도시'를 탈출하자고 부단히 노력한 덕분이다. 숲과 가로수가 시원한 그늘 못지않게 미세먼지까지 없애주고 걸러주니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도시 녹화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더불어 아파트 등 주택가 조경도 중요해졌다. 아파트 단지의 울창한 숲은 아름다운 경관뿐만 아니라 도로에서 안방으로 날아드는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도로변 담장 울타리의 키 낮은 나무도 함부로 볼 일이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차량 분진과 미세먼지를 차단해주는 주민들의 진정한 건강 지킴이다. 역세권 못지않게 아파트 숲세권은 갈수록 가치를 더할 것이다. 공기 질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시 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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