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신뢰성이 한 방에 무너지는 발표가 있었다. 감사원 조사에서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이하 프라임사업) 대상으로 이화여대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총 6천억원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 대학지원사업으로 '박근혜표 대학지원사업'의 맏형으로 여겨졌다. 워낙 지원금액이 많다 보니 대학마다 선정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해 탈락이 유력했던 이화여대가 최종 선정되고 점수가 더 높았던 상명대가 탈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대구권 사립대 A교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참, 맥이 빠지네요. 지난해 준비할 때 동료 교수와 직원들과 함께 몇 날 며칠 밤을 새웠어요. 과거 대입 공부하듯이 열정을 불태웠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죠. 하지만 저런 조작질이 있었다니…."
대학재정지원사업은 이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대학 사회에서는 교육부가 돈줄을 쥐고 대학들을 줄 세우고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인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생력이 떨어지고 재정이 열악한 대학 대부분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교육부의 지원에 매달려왔다.
대학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국고를 지원하는 사업들을 통칭한다. 교육부가 사업계획을 수립하면 한국연구재단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 수탁 기관이 사업 운영과 관리를 해왔으며 평가를 통해 대학을 선정하고 차등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의 올해 예산만 1조5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기존의 각종 사업에다 올해는 무려 3천271억원이 투입되는 사회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사업(LINC+)도 생기는 등 규모가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지금까지 이 사업이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고 교육의 질을 높여 사회가 바라는 인재를 배출하는 데 나름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긍정 평가할 대목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달리 대학이 지역 산업과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도 기여했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이다. 일각에서는 대학 스스로 구조개혁을 못 했기 때문에 교육부가 좋든 싫든 총대를 멨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획일적인 잣대와 방식으로 말미암아 대학들은 갈수록 정체성과 자율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 또한 커지고 있다.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면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보니 몇 년째 등록금을 인하하거나 동결하고 인원 감축이 잣대의 하나가 되면서 제 살을 깎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갈수록 이공계와 인문계와의 지원 격차가 벌어지는 등 대학 본연의 기능인 연구와 학문은 뒷전이다.
사업 효과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투입 대비 산출로 따졌을 때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대학교수 1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70.4%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이 교육과 연구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장 교수들의 불만의 소리도 상당하다. 한 교수는 "지원사업 준비하다 보면 연구를 위해 돈이 필요한 건지, 돈을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며 "대학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선이 코앞이다. 누가 되든 교육 정책은 또 한 번 출렁거릴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대폭적인 기능 축소는 불가피하고 대학재정지원사업 방식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수의 우수 대학만을 위한 현재의 줄 세우기식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비수도권 대학이나 열악한 소규모 대학들도 역량을 키우며 살 수 있도록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재벌 딜레마'에 빠진 우리나라 경제 생태계만 보더라도 답은 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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