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상당수 의원들이 유승민 후보를 향해 "연대에 나서라"며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과거 신당 창당을 발판으로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한 후보들의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유 후보도 이들의 실패를 이어받을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여섯 차례의 대선 중 2012년 18대 대선을 빼고는 신당 후보들의 대권 도전이 계속됐다.
첫 시도는 1992년 14대 대선 때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이 창당 직후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31명을 당선시키며 정치권에 일대 파장을 몰고 왔고, 정 회장은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대선에 출마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16.31% 득표율로 3위에 그쳤고, 다음해 현대 비자금 문제로 기소된 뒤 짧은 정치실험을 마감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가 그해 10월 10일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 득표율 19.20%로 3위에 머물렀다. 국민신당은 이후 10개월 만에 해체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고(故) 정주영 회장의 아들 정몽준 국회의원이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창당한 국민통합21의 대선 후보로 나왔다. 정 의원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 협상을 타결했지만 여론조사를 거쳐 노 후보가 단일 후보로 확정됐고, 선거 전날 지지를 철회해 파문을 일으켰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민통합21은 울산에서 당선된 정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낙선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나섰지만 5.8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선은 조직과 인지도 싸움인데, 신당은 이런 점을 극복하기 어렵다. 유 후보가 완주해도 바른정당의 존속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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