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더스트 보울

1930년대 전반 미국 중부를 뒤덮은 가뭄과 모래폭풍은 이 지역을 '먼지 지옥'으로 만들었다. 와이오밍, 사우스 다코타, 콜로라도, 네브래스카, 캔자스, 텍사스, 오클라호마로 이어지는 대평원 지역은 초토화됐다. 이때 만들어진 별명이 황진(黃塵) 지대를 뜻하는 '더스트 보울'(Dust Bowl)이다. 경제 대공황과 모래폭풍 피해가 가장 심했던 이 시기를 미국인들은 '더티 서티즈'(Dirty Thirties)라고 부른다.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이 땅을 떠났다. 1940년까지 서부로 떠난 인구가 약 250만 명이었다. 미국 역사상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인구가 대이동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농사를 망쳐 은행 빚을 갚지 못한 농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지로 이주했다. 이 시기 농민의 절망적인 삶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잘 녹아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말로 '와이오밍'은 대평원이라는 뜻이다. 미국 중부의 지역적 특성을 잘 말해주는 지명이다. 드넓은 이곳은 바람이 거센 척박한 땅이었다. 그나마 사막화를 막은 것은 뿌리가 깊은 여러해살이 풀이 땅을 뒤덮고 있어서다. 하지만 옥수수와 밀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갈아엎자 대평원의 생태 균형은 깨졌다. 1930년대 극심한 가뭄과 맞물려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황무지가 된 것이다.

5월 들어 황사와 미세먼지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내몽골과 중국 북동부에서 발원한 황사가 지난 주말 내내 강한 북서풍을 타고 한반도에 몰아닥쳤다. 미세먼지 농도는 경보 수준까지 치솟았다. 수도권은 최악의 먼지 지옥으로 변했고 건조 경보가 발령된 강원'경북 등은 크고 작은 화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황사는 중국 북부의 사막화 등 생태환경적 요인이 크다. 하지만 요즘 초미의 관심사가 된 미세먼지는 우리 자체의 영향도 적지 않다. 서해안에 밀집한 화력발전소와 차량들이 내뿜는 질소산화물 등 매연이 그 원인이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과 대응은 굼뜨기만 하다. 국민은 환경부나 기상청의 미세먼지 농도 기준을 불신하다 못해 일본 등 이웃나라 기준을 더 믿는다. 정부와 국회가 미세먼지, 황사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이 한반도가 제2의 더스트 보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더티 서티즈'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더티 타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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