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도록 그리운 어버이…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은 옷·음식 대접해 드리고 싶어
늙은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는 말에서 유래된 '반의지희'(斑衣志喜), 다 자란 까마귀가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을 표현한 '반포지효'(反哺之孝),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십계명까지. 효(孝) 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한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로 전해진다. 따로 사는 부모님께 매일 안부전화를 드리는 일도 드문 요즘, 장주호(86) 씨는 40년째 부모님 산소 곁을 지키며 매일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다. 세월이 흘러 장 씨도 노인이 되었지만 그는 살아있는 동안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대구 동구 내동 소문난 효자
#고생하신 부모님 명당에 모셔
#비·눈 오는 날에도 거르지 않아
#"孝 정신은 사회생활의 밑거름"
◆40년째 매일 부모님 산소를 찾는 아들
장주호 씨의 하루 시작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일찍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예전에는 아침을 먹기 전에 다녀왔지만 장 씨도 팔십이 훌쩍 넘은 노인이기에 식사를 해야 왕복 10리(里) 길을 오갈 기운을 얻는다.
대구시 동구 내동에 살고 있는 장 씨는 아침마다 2㎞ 떨어진 부모님 산소를 방문해 문안 인사를 드린다. 그가 매일 아침 부모님 산소를 찾은 것도 무려 40년째다. 장 씨는 1977년과 1986년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곳에 모셨다. 그는 자식들이 외국 여행을 보내준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산소를 찾아 아침 인사를 올리고 있다.
무려 40년 동안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이 번거로울 법도 하지만 장 씨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장 씨는 이미 종친들이나 마을 일대에서 소문난 효자로 불린다. 어릴 때는 바쁜 부모님을 도와 소여물을 먹이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후에야 학교에 갔다. 아버지가 식도염으로 오래 고생했을 때는 매일 산에 올라 치료에 좋다는 약초를 캐다 드리기도 했다.
◆부모님을 명당에 모시고 싶은 자식의 마음
비나 눈이 오는 날도 장 씨는 문안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십수 년 전 어느 날에는 멧돼지와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순간 그는 어찌할 줄 몰라 걸음을 멈추고 잠시 동안 멧돼지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던 중 멧돼지가 천천히 길을 터 주었다. 매일 오가는 길이지만 그때만큼은 장 씨도 간담이 서늘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멧돼지와 종종 만나지만 길을 가로막아서는 일은 없었다.
효자에겐 이승을 떠난 부모님을 모시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장 씨는 부모님이 생전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만 하셨기 때문에 산소만큼은 최고의 자리로 정하고 싶었다. 부모님 산소는 멀찌감치 보이는 고산의 골짜기에서 물이 합수돼 들어오는 길지에 자리 잡고 있다. 풍수의 요체는 음택이나 양택에 상관없이 배산임수를 고려해야 하는데 장 씨는 부모님을 양지 녘에 위치한 명당에 모셨다.
◆'효' 사상은 인간 삶의 뿌리
"효는 백행의 근본이다." 돌아가신 장 씨의 아버지가 생전 매일 자식들에게 전했던 말이다. 요즘은 부모 자식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자식이 상전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도리와 예의, 특히 부모를 공경하는 '효' 정신은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 밑거름이 된다고 장 씨는 교육받았다.
장 씨도 자식들을 가르칠 때면 효 정신이 인간 됨됨이의 근본이라고 전했다. 장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매일 부모님 산소에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객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은 고향에 오면 장 씨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할아버지 산소부터 찾아 인사를 드린다. 장 씨는 "부모에게 효심이 있는 사람은 절대 나쁜 짓을 할 수 없다. 잘못된 생활을 하는 자체가 부모를 욕되게 하는 일이라 항상 자세와 마음가짐을 똑바로 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장 씨는 예로부터 전해온 효도10훈(孝道十訓)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처음 몇 년간은 매일 산소를 찾는 장 씨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쟁이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40년간 매일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고집이 아닌 기준을 내세우는 그이기에 이제는 존경받는 효자로 통한다.
장 씨는 자식이라면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부모를 공경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자식으로서의 덕목은 바로 '출필곡반필면'(出必告反必面) 즉 드나들 때는 밝은 표정과 공손한 말씨로 부모에게 인사하는 일이다. 장 씨는 아주 평범한 촌로이지만 묵묵히 '효가백행'의 근본을 실천하는 작은 거목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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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에
6남매 키우느라
고생만 하셨다
남 피해주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
가르치셨다
내 자식에
똑같이 전했다
40년간 매일 산소를 찾는 사부곡의 비결은 뭘까? 장주호 씨가 듣고 자란 가정교육과 자녀에게 가르치는 교육은 어떻게 다를까? 장 씨가 생각하는 효심(孝心)은 한 인간이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가짐이자 세상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 산소를 40년째 매일 찾는 이유가 있나?
▶우리 아버지는 보릿고개에 6남매를 먹여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다 일찍 돌아가셨다. 잘 입지도 잘 먹지도 못하면서 자식만 키우고 저 세상에 가셨기 때문에 아들로서 미안함이 크다. 사무치도록 그립기도 하다.
-아버지의 훈육 방식과 자신의 자녀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아버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가르치셨고 나도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전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지만 내 자식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한다.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내 자식들도 효자, 효녀다.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은?
▶말보다 좋은 음식과 옷을 해드리고 싶다. 아직도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선하다. 나만 좋은 세상에 살고 있어 미안하고 감사하다.
-자식들도 매일 아침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하나?
▶나는 농사를 짓고 산소 근처에 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 자식들은 도시에서 바쁘게 사니까 똑같이 하기 힘들다. 내 아버지는 존경할 수 있도록 매사에 모범을 보이셨다.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은 그에 대한 자식의 예의이고 내 자식들은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똑같을 필요는 없다.
-'효'(孝)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옳다 그르다 자식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관, 이를테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서 '효'라는 관계가 나온다.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는 돌보지만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고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 된다. 요즘은 요양병원이나 다른 사람이 해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 세대는 자식이 부모를 봉양한다. 매일 아침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내 방식의 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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