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컴, 투게더

무한경쟁시대, 아등바등 살아가는 중년부부 가족

아내, 남편, 딸 등 세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의 일주일을 관찰하는 가족 드라마이다. 40대 중년 부부와 재수생 딸 각각은 자신의 자리에서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보지만,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일상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섬세하고 통렬한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신동일 감독은 이단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데뷔작 '방문자'(2006)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2008)에서는 한 부부와 친구 사이의 삼각관계를 통해 어지럽게 일그러진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겨냥했다. '반두비'(2009)에서는 자꾸만 뒤로 가는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응시하면서 여고생과 이주 노동자의 우정과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이번 작품은 블랙코미디를 날카롭게 구사하는 신동일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이자,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실업률 5.0%, 실업자 수 135만 명, 신용 불량자 100만 명, 사교육비 18조원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장 범구(임형국)는 18년간 다닌 회사에서 해고되고, 카드사 영업사원 미영(이혜은)은 과열 경쟁으로 라이벌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기는 등 치열한 하루를 보낸다. 재수생인 한나(채빈)는 대학 추가 합격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합격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다 아빠와 갈등을 빚는다. 한나는 대학에 가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경(한경현)의 집에서 지내게 되고, 때마침 고등학교 후배 아영이 같은 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해고된 범구는 졸지에 전업 주부가 되어 윗집에 사는 또 다른 백수 남성과 교류한다. 미영은 실적을 놓고 라이벌과 좋지 않은 감정 상태로 지내며, 한나는 대기자 차례가 좀처럼 자신에게 오지 않자 끔찍한 생각을 한다. 이들의 지리멸렬한 상태와 불안한 감정은 한날한시 다른 공간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동시에 폭발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과 관련된 방식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잔인한 감정이 이들을 어지럽게 한다.

영화는 조용히 일상을 관찰하는 방식에서 시작하여 점차 떠들썩한 사건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 여기, 모두가 생존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서로 할퀴는 지옥도의 풍경이 그려진다. 이 지옥도를 만든 거대한 사회악이나 제도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주위 사람이 거추장스럽다. 가족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서로 괴롭히고 할퀴다 보면 남는 것은 피폐해진 자아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뷰티'(1999)의 한국판이라고 봐도 될 정도인데, 자본주의와 가족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한 방식으로 잘 보여준다.

범구가 냄새를 못 맡는다는 설정은 경쟁 사회에서 이탈된 패배자의 도태 상태를 은유하고, 미영이 카드 실적을 채우려고 애를 쓸수록 일은 자꾸만 꼬이며 자신에게 궁색해진다. 이들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지만, 말을 할수록 가족 간의 갈등은 증폭된다.

범구의 18년간 다니던 직장, 한나의 18번 대기자 순서, 미영이 창립 18주년 기념으로 제시된 상품을 받기 위해 1위를 향해 달리는 것에서 공통의 숫자가 추출된다. 예사롭지 않은 숫자 '18'은 헬조선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영화가 마냥 어둡게만 치닫지는 않는다. 생존이 우선인 아비규환의 경쟁 사회에서 그 화살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말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존재하고, 청춘을 웃게 하는 일로 인해 다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촛불정국과 탄핵 정국을 거친 후 어느새 다시 희망을 품게 된 요즘, 이 영화의 예상을 비트는 결말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헬조선이 언제까지나 헬조선이랴. 더 절망할 힘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에 기이하게도 다시 떠오를 힘이 생겼음을 영화도 세상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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