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美·佛 주요국 선거 보수파 승리
한국 대선엔 사상 최대 표차로 참패해
문재인 승리로 노무현 완벽한 伸寃
대한민국은 한쪽 날개로 날게 될 듯
참패였다. '보수'의 완벽한 패배였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기간, 홍준표가 장담한 역전은 없었다. 안철수와 단일화가 되었더라도 표차(票差)는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영남에서 더 얻는 표만큼 호남과 수도권에서 문재인에게 표가 몰렸을 테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역전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대차(大差)가 난 건 납득하기 어렵다. 패배를 확인한 뒤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의 복원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이만한 대차를 두고 '복원'이라 한 건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다. 그는 솔직히 '보수는 망했다'고 자인했어야 했다. 작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자멸한 건 박근혜와 그녀를 추종하던 정치세력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무엇이 이처럼 처참한 패배를 불렀나? 최근 몇 년간 세계 주요국의 선거에서 우파는 전부 이겼다. 독일과 영국, 일본은 우파 정권이 들어선 지 오래다. 미국은 오바마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승리했다. 며칠 전 프랑스 대선에선 에마뉘엘 마크롱이란 신우파가 등장했다. 우리 언론에선 그를 중도라고 부르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다. 마크롱은 탈규제, 작은 정부에다 감세를 주장하는 명백한 우파다. 그런데 우리는 우파가 졌다. 그것도 사상 최대 표차다. 선거에서 이기면 승인(勝因)은 100가지가 넘는다. 지면 100가지가 넘는 패인이 거론된다. 그런데 이번엔 두드러진 패인 하나로 족하다. 보수 정당과 보수 후보가 박근혜의 '망령'(亡靈)을 떨치지 못했다는 게 그것이다.
왜 박근혜는 보수의 망령이 된 것인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는데도 언론과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보수 후보로 불렀다. 그녀는 6'15선언까지 수용했지만 우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보수 후보로서 어떤 의심도 받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보수 후보인 이유가 있었다면 박정희의 후광(後光) 단 하나였다. 만약 그녀가 이념과 정책에 밝아 자신이 선택한 급진좌파 노선대로 '커밍아웃'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그녀는 이념에 무지했다. 그러다 보니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헤맸다. 민영화는 코레일에서 좌절했으며 공무원연금 개혁은 지급률 50%에 합의해 노무현정부의 구상보다도 후퇴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계속하다 보니 국가부채를 마구잡이로 늘려 정부가 재정으로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니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내수는 꽉 막혔다. 이 모든 것은 박근혜의 실정(失政)이 아니라 보수의 실패가 돼버렸다. 거기에 더해 최순실 게이트는 보수와 부패를 일체화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 정당과 보수 후보는 박근혜표 '가짜 보수'가 아닌 '진짜 보수'를 보여주지 못했다. TV토론회에서 '사람은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은 유승민은 과거 자신이 내세웠던 '사회적 경제'가 짐이 됐다. 게다가 '배신자' 프레임을 끝내 벗지 못했다. 결국 보수층은 홍준표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우선 후보 선출 직전까지 중앙정치와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후보가 된 뒤 황금 같은 열흘을 흘려보냈다. 지사직 사퇴를 미뤄 대선까지의 기간 4분의 1을 탕진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 시간에 자신의 정부가 박근혜정부와 무엇이 다를 것인지를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제성장과 세밀한 복지를 내세웠다면, 그리고 방만한 공기업과 국가 조직을 대수술할 것을 약속했다면 말이다. 그가 말한 '보수의 복원'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실패했다. 마치 2등이 목표인 것처럼 행동했다. 무엇보다 그가 말한 동남풍이 서울까지 불기에는 시간부터 부족했다.
어쨌든 이 나라 좌파는 득의만만(得意滿滿)하다. 9년 만에 집권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보수를 문자 그대로 괴멸시켰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가 그들 뜻대로 진보주의의 길을 걸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문재인의 승리로 노무현은 이제 완벽하게 신원(伸寃)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민주정부 3기'라고 불러 과거의 '보수정권'과 편을 갈랐지만 그걸 나무랄 수도 없게 됐다. 이제 보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함께 순장(殉葬)된 보수는 과연 무덤을 헤치고 나올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가 보인 행태를 정반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쪽 날개로 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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