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거 내각

요즘 프랑스의 정치 상황은 국내 신문 방송 보도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메뉴다.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점, 1977년생 젊은 대통령의 출현은 프랑스 정치에 관한 이해도가 낮은 우리에게도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24세 연상의 퍼스트레이디 등 대중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겹친 것도 이유다.

화제의 중심에 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명문 그랑제콜인 파리정치대학 출신이다. 중도좌파인 그는 지난해 11월 대선 과정에서 조직한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이끌었고 얼마 전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로 당명을 바꾸었다. 신생 정당인 탓에 하원 의석은 단 1석도 없다. 하지만 스마트하고 참신한 이미지의 마크롱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크다. 변화와 전진이다.

어저께 화젯거리가 추가됐다. 마크롱이 우파 정당인 공화당의 40대 정치인 에두아르 필리프를 총리로 지명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견제'균형으로 국정을 꾸리는 이원집정부제가 골격인 프랑스 5공화국 헌법 특성상 다수당의 도움은 원만한 국정의 필수다. 이런 정치 역학 관계가 중도좌파 30대 대통령과 중도우파 40대 총리의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필리프 총리는 노르망디의 르아브르 시장이다. 널리 알려진 정치인은 아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2차대전 이후 대통령이 직접 다른 정당 인사를 총리로 지명한 첫 사례라는 점이다. 과거 미테랑-시라크(1986~1988), 미테랑-발라뒤르(1993~1995), 시라크-조스팽(1997~2002) 등 세 차례의 '코아비타시옹'(동거 정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동거 정부의 성격은 이전과는 또 다르다. 대립과 반목이 앞서는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는 보기 어려운 결정이다.

문재인정부의 인선이 한창이다. 언론은 문재인정부의 인선 코드에서 '서시오'라는 조어도 만들어냈다. 서울시와 시민단체 출신, 50대라는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새 정부 인선 과정에서 '동거 내각'의 가능성도 일부 제기됐다. 하마평 수준에 그쳤지만 유승민 경제부총리, 심상정 노동부장관 입각 카드다. 당사자들은 그런 제의가 없었고 그럴 의사도 없다며 손사래 친다.

우리 정치 환경과 의회민주주의 성숙도로 볼 때 동거 정부는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정당마다 국민을 위한 정치, 포용의 정치를 표방하고 있다면 이제 동거 정부가 가능성 차원에 그칠 까닭은 없다. 개헌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한국 정치도 조금씩 변신할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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