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열(가명'55) 씨의 배에는 30㎝ 길이의 수술 자국이 있다. 간암 진단을 받은 이 씨에게 아들이 간을 이식해 준 흔적이다. 한 달 전 이 씨 부자는 9시간에 걸친 간 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이 씨는 "수술이 별 탈 없이 끝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이 씨가 약봉지를 꺼내 들었다. 간 이식을 받은 이 씨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면역억제제와 항균제, 항생제, 혈전용해제, 이뇨제 등 10가지가 넘는다. "매일 10번씩 약을 챙겨 먹어야 하니까 알람을 맞춰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쑤예요."
이 씨는 본인보다는 간 이식 후유증을 앓는 아들이 걱정이다. 공군부사관을 준비하던 아들은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했다. 젊고 건강한 아들이 금세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아들은 퇴원 후 1주일 만에 배에 복수가 찼다. "배가 불룩 나오고 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열흘 정도 앓았어요. 못난 아비 탓에 아들까지 고생이네요."
◆형의 사업 실패로 시작된 불행
20여 년 전 호기롭게 안경 수출 사업을 시작한 형은 가족들의 돈을 몽땅 사업에 투자했다. 아버지는 유일한 재산인 집까지 팔아 형을 지원했지만, 형은 1년 만에 빚만 산더미처럼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그때부터 가족들의 고난이 시작됐다. 70대 노부모는 반지하 월세방을, 이 씨는 여관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채무불이행자 신세가 된 이 씨는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아내와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결혼 초 택시기사로 일하던 이 씨는 하루에 수십 통씩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이 씨의 친구들에게 전화해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결국 이 씨는 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갈라섰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 씨는 친구와 함께 이삿짐을 나르며 일당을 받았고, 문신 시술을 하며 경제적으로 다소 안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씨의 삶은 평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4년 전 아버지와 누나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소동을 일으켰고, 시도 때도 없이 이 씨에게 전화해 욕설을 퍼부었다.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요양원이 있는 가창으로 달려가야 했죠."
◆방치한 급성 간염이 간암으로 발전
이 씨는 B형 간염 보균자였다. B형 간염은 이 씨의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20대 중반에는 대기업 공채를 어렵게 통과하고도 급성 간염 진단을 받고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땐 크게 불편한 증상이 없었고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어요." 내버려둔 병은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 2013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갈비뼈가 부러진 이 씨는 병원에서 간경변 2급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꾸준히 약을 먹으며 관리했지만 지난해 12월 종합정기검진에서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일이 고되고 몸이 허약해서 힘든 줄 알았지 간에 말썽이 생긴 줄은 몰랐죠.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그야말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어요."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친구에게 2천만원을 빌려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공군부사관 임용을 준비하던 아들은 꿈과 아버지의 건강을 맞바꿨다. 간 이식은 부사관 임용 결격 사유다. 이 씨 부자는 지금까지 기초생활수급비로 매달 100만원을 받았지만, 다음 달부터는 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지원금마저 줄어든다. "저 때문에 꿈마저 포기한 아들의 미래가 너무나 걱정돼요. 아들에게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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