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21> 자동차 정비 명장 김운섭

"자동차 정비, 로봇으로 대체 불가…후배들에게 기술·경험 전수"

30년 자동차 정비 외길 인생을 살고 있는 김운섭 명장은
30년 자동차 정비 외길 인생을 살고 있는 김운섭 명장은 "자동차 정비가 천직"이라고 말했다.
2016년 6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운섭 명장.
2016년 6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운섭 명장.

원인 불명의 고장 차도 김운섭(47) 자동차 정비 명장의 손을 거치면 새 생명을 얻는다. 김 명장은 "진정한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면서 "자동차 정비란 단순히 고장 난 차량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최연소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30여 년 외길 인생을 자동차와 함께해온 김 명장은 2015년 자동차 정비 명장에 선정됐다. 자동차 명의로 불릴 만큼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는 만족이란 단어 대신 '도전'을, 정지란 말 대신 '전진'을 인생철학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해 가고 있다. 김 명장은 "기술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며 "기술은 공개되고 퍼져야 더 발전할 수 있고, 기계를 위한 기술이 아닌 사람을 위한 기술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현장을 지키며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갈고닦은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한 손에 공구, 다른 손엔 책

김 명장은 문경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자동차 정비사란 직업은 어릴 때 공고에 다니는 옆집 형이 기능사 자격증을 딴 것이 자극제가 됐다. "국가고시에 합격했다며 자랑하길래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명장은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동차 정비와 인연을 맺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각종 기능대회와 국제기능올림픽을 준비하는 특별반에 들어가 미친 듯이 공부해 1년 만에 자동차 정비 2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고 1년(16세) 최연소 자격증 취득이었다. 1988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대구 예선에서 2위를 해 전국대회에 출전했으나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다. 이듬해 기아자동차 정비기술경연대회에 출전해 3위를 차지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94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했다.

그러나 입사 3년 만에 IMF 외환 위기 사태를 맞았다. "정말 힘들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선배님이 남아야죠?', '넌,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잖아?'하면서 서로 양보했다"면서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저는 살아남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 명장에게 IMF는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현장에서 부족한 이론을 보완하기 위해 1998년 영남이공대 자동차과 야간부에 입학해 2000년 졸업했다. 이후 2년 동안 학점은행제 공부를 하는 등 말 그대로 '주경야독'하면서 자동차 전문학사와 자동차공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공학사 학위를 받는 순간 어딘가 가슴 한구석에서 찡한 경련이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고 했다. 김 명장은 자동차정비 산업기사와 자동차검사 산업기사, 자동차 실기교사 자격증 등 자동차 분야 6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2006년에는 자동차 정비 기능 분야의 최고의 자격증인 기능장이 됐다.

이처럼 학문과 기술 숙련의 욕심을 모두 놓치지 않은 결과 그는 기아자동차 사내 품질개선상을 8년 연속 수상하고 대통령표창(2007)과 산업포장(2010), 신지식인(2011)에 선정됐다. 그는 또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자동차 분야 개발위원으로 참여해 이 분야 지식과 기술, 교양 등 내용을 산업별 수준별로 체계화하는 등 숙련기술인들의 직무 향상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2015년 대한민국 자동차 정비 명장에 선정됐다. 김 명장은 "네가 내 나이가 되면 기술이 대접받는 시절이 온다. 꿈을 가져라"며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고교 선생님이 생각난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에 대한 철학

김 명장의 하루는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꼼꼼히 고객의 차량을 진단해 고장난 부분을 수리한다. "인술(仁術) 하는 마음으로 한다. 생명과 직결돼 있는 만큼 고객의 아픔까지 치유해줄 수 있는 마음으로 정비에 임한다"는 김 명장은 수리한 차량을 보며 만족해하는 고객의 모습을 보면 더 나은 기술로 더 좋은 서비스를 해드려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자동차 정비가 천직인가 봐요."

김 명장은 자동차 정비라는 직업은 앞으로 꿈이고, 미래이며, 희망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제가 자동차 정비라는 직업을 좋아하게 된 점은 어떤한 경우라도 사람의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다른 직업은 어떤 지정된 데이터에 의해 자동화설비로 상품화할 수 있지만 자동차 정비라는 직업은 로봇으로 할 수 없다. 즉 사람의 손과 두뇌의 판단력이 없으면 차량을 정비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명장은 "앞으로 미래 직업군으로서 더욱더 각광 받으면서 어떤 직업보다 오래갈 것이고,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우대받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자동차 정비"라고 했다.

◆일자리 양성에 앞장설 터

김 명장은 누구보다 바쁘게 산다. 산업현장 교수를 비롯해 청소년보호관찰협 진로지도위원, 직업능력심사평가원 통합심사 평가위원, 국가직무능력표준 국가기술자격 개편 자동차 정비 분과위원, 호산대 석좌교수, 영남이공대 총동창회 부회장 등 직함이 열 개도 넘는다. 그 가운데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많다. 김 명장은 "자신의 꿈이나 소질이 무엇인지 모른 채 스펙쌓기와 무한경쟁시대에 내몰리는 젊은이에게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전수하는데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miss match'일자리 부조화) 현상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전공하는 후학들의 멘토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김 명장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생 경영을 통해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면서 직업훈련을 통해 블루 엘리트를 양성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진로를 결정하고,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은 직업교육훈련을 받는다. 현장 중심의 교육훈련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독일 경제의 든든한 힘"이라고 했다.

김 명장은 또 국가에서 지정한 명장이나 기능장들을 잘 활용해 후진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기능인들을 대우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정비도 3D 업종 중의 하나로 젊은이들이 취업을 꺼리는 분야이다. 저도 후배들에게 산업현장의 기술과 경험을 전수해 줄 수 있는 모범적인 선배로 남고 싶다"고 했다.

김 명장은 끝으로 꿈이 하나 있다고 했다. "자동차와 미용 등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이루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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