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남(熱南)②-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우수상

"무사히 귀국하고 싶은 소망, 그 간절한 바람을 금반지로 산다는 말인가"

남쪽의 사이공으로부터 북쪽 하노이까지 연결된 베트남 1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노닐고 있는 물소 떼를 볼 수 있었다. 오른쪽은 장병들에게 지급된 C레이션. 김옥열 씨 제공
남쪽의 사이공으로부터 북쪽 하노이까지 연결된 베트남 1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노닐고 있는 물소 떼를 볼 수 있었다. 오른쪽은 장병들에게 지급된 C레이션. 김옥열 씨 제공

하루 정박했던 다낭 항을 출발하면서부터 선내에서는 각 연대와 중대별로 인사 분류가 있었다.

마이크로 개인 이름을 부르고 각 부대별 소속, 부대명을 함께 호명하면서 배 위는 무척 소란스럽고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배속이 확인되기까지 내 이름을 놓칠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백마부대 소속이니 다른 부대로 갈 수는 없지만 최종 배속받는 부대 결정에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백마 사단은 전투부대인지라, 연대급인 예하 4개 부대로 분류되므로 사령부와 28, 29, 30연대로 나누어서 모두가 그중에 한 곳으로 배속받게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배치받아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살아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에 모두들 눈에 불을 켜는 것 같았다.

배속을 앞두고 금전 거래가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반짝이던 금반지가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인사 분류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모두들 미리 반지를 준비해온 모양이었다. 좀 더 안전한 곳에 보직을 받아 무사히 귀국하고 싶은 소망, 그 간절한 바람을 돈과 금반지로 산다는 말인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호명을 시작하고 다섯 시간 정도 지나서야 나는 제29연대로 배속되었다.

◆야자수와 갈대꽃

1971년 11월 1일 오후 1시가 되어 가는 시각. 7박 8일간의 기나긴 항로 끝에 도착한 곳은 월남의 남쪽 캄란 부두였다. 출정 때와는 반대로 부두에는 우리를 반기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안개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디뎌보는 땅이라 머나먼 뱃길에 시달린 데다 오랜 뱃멀미 탓인지 강한 현기증이 왔다. 심한 공복에 더블백을 둘러멘 어깨가 기울어지면서 발 디딘 땅이 크게 움직이는 것 같이 흔들렸다.

곧 부두에서 인원 점검이 있었다. 안개비가 그치면서 수송 부대인 십자성 부대에서 수많은 차량이 나와서 우리는 백마 사단 사령부가 있는 닌호아 지역까지 그 차량을 타고 장장 4시간을 또 달리며 월남의 첫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베트남 1번 국도. 남쪽의 사이공으로부터 저 북쪽 하노이까지 잘 포장되어 연결된 이 나라에선 제일이라는 이 국도를 달리면서 비로소 내가 이역만리 타국에 도착한 것이 실감 났다.

마침 우기철로 접어들어서인지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제법 시원해서 우리의 가을 날씨 같았다.

도로를 따라 북으로 끝없이 달리며 스쳐가는 풍경들은 상상만 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날카롭고 크고 긴 뿔을 가진 물소 떼가 노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잿빛의 코끼리 같은 거대한 맨몸을 희뿌연 흙탕물 속에 담고 머리와 뿔만 내놓은 물소도 보인다. 물소의 잔등에 남자들은 안장도 없이 올라앉아서 긴 장대나무 낚싯대를 어깨에 메고 한가롭게 가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긴 머리카락과 함께 치렁한 흰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아가씨들도 자주 눈에 띈다. 처음 보는 생소한 모습이지만 왠지 정겨운 풍경이었다.

바다를 끼고 오랫동안 달리던 차는 이윽고 높다란 산을 돌아 계곡 속으로 들어섰다. 도로 옆으로는 철도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이 나라 유일의 철도라고 하는데, 단선의 기차 레일은 모두 녹슬고 침목도 무척 낡아 보였다.

가끔 보이는 길옆 폐허가 된 건물에는 무수한 탄흔들이 남아 있었다. 작은 교량이나 마을 입구에는 모래주머니로 높게 쌓아올린 탄막이 호가 있고 그 속에서 근무 중인 사람들은 약한 몸매의 민병대원이라고 호송병이 알려주었다. 모두 M16 소총을 소지하고 있지만 왠지 하나같이 허술하게만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맨발에 소총을 어깨에 거꾸로 멘 채 터덜거리며 힘없이 걷는 그들의 모습은 피로에 젖어 귀가하는 시골농부 같아 보였다.

네 시간 동안 차로 달린 끝에 비로소 닌호아의 백마 사단 사령부에 닿았다. 타향에서는 고향 까마귀의 울음소리도 반갑다던가. 정다운 우리글, 우리말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장병들이 있는 우리의 삶으로 무사히 들어오니 그 반가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우리는 미리 배속된 연대별로 곧바로 나뉘어 헤어졌다. 낮이기 때문에 기지 자체는 경계 태세가 그리 엄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섯 겹의 높다란 철조망이 우람하게 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사이의 조명 지뢰, 무서운 클래머 지뢰가 설치된 모습을 보자, 비로소 전쟁 중인 나라, 월남에 드디어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샌드백으로 튼튼히 쌓아올려 어떤 포격에도 견뎌낼 것 같은 견고한 초소, 그리고 경계 참호들은 전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

29연대 연병장에서 연대장에게 간단한 전입신고를 한 후 앞으로 보름 동안 현지 적응 훈련을 받을 보충교육대로 향했다.

주월 9사단 제29연대 신병보충교육대. 이름 그대로라면 지금까지 개인과 단체별로 다양하게 받았던 전투 교육들을 좀 더 재정비하고, 향상된 수준으로 보강하는 교육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보충 교육은 아예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롭게 뒤바꾸는 개편 교육이었다. 한 달 동안 보충 교육을 마치고 이곳으로 전출을 왔는데 그동안의 훈련은 완전히 무시당하고 정말 처절한 재훈련이 시작됐다.

이튿날부터 기상과 함께 바로 훈련이 실시됐다. 이 세상 어느 군대, 어느 교육대에 이런 교육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의 혹독한 지옥 훈련이었다. 고국의 유격대 훈련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눈알이 팽팽 도는 그 자체의 훈련이 계속되었다.

죽음과 대면하는 이곳 생활에서 살아 숨 쉬는 동안에는 눈에는 핏발이 빨갛게 서야 하고, 살아서 돌아가고 싶다면 적의 목을 비정하게 따버릴 수 있는 참혹한 잔인성을 갖추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태어나고서부터 지금까지 몸에 밴 관념과 안일한 타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악의 극한 상황으로 육신을 몰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끝없는 고달픔과 진저리치는 시간, 그 사이 악에 받쳐 눈에는 푸른 살기를 띠게 되고, 꼭 죽지 않을 만큼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도 모르는 초능력의 힘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말소리는 쇳소리 같은 악에 받친 패기가 있어야 하고 목소리조차 서릿발처럼 날카롭고 새파래야 한다고 했다.

훈련을 시작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할 정도로 목은 쉬어 잠겨 버렸다. 잠시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돌려가며 퍼붓는 조교들의 기합과 구타, 그리고 집단폭행같이 나타나는 압박의 연속들. 정말 머나먼 타국으로 와서 이토록 심한 고생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토록 바쁘고 두렵고 고된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눕는 시간이 오면 전신을 덮치는 피로로 온몸이 솜처럼 무거워지고, 핏발처럼 서 있던 의식은 아득한 세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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