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굶주림·역병·전쟁 극복한 인간, 노화와 죽음도 극복할까…『호모 데우스』

호모 데우스/유발 하라리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 펴냄

세계사의 어느 왕조, 어느 문명에서건 인류는 3가지 똑같은 문제를 안고 분투했다. 굶주림, 역병, 전쟁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목록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3가지 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각자가 숭배하는 모든 신과 천사에게 기도했고, 수없이 많은 제도와 도구, 기술, 사회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나 끝없는 기도에도 굶주림과 전염병, 전쟁은 이어졌고, 수백만 명씩 계속 죽었다.

◇역병'전쟁'기아 극복

지난 몇십 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는 데 그럭저럭 성공한 것이다. 물론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아졌고,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자살하는 사람이 전쟁이나 테러, 범죄로 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이제 인류는 적어도 굶주림과 전염병, 전쟁을 통제 불가능한 폭력이나 신의 명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과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까닭에 인류는 역병과 전쟁, 기아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어떤 신이나 성자에게 기도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의 잘못'으로 여기고, '조사위원회'를 꾸리거나 '과학과 기술'로 대책을 세운다.

◇인류의 다음 목표는?

굶주림과 역병, 전쟁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 적어도 이것들을 극복 가능한 '영역'에 가두는 데 성공한 인류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더 이상 목표는 없어지고, 망중한을 즐기는 차원으로 넘어갈까? 아닐 것이다. 망중한의 단계로 간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내는 데 성공한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 즉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호모 데우스'는 사람 속(屬)을 뜻하는 학명 '호모'(Homo)와 '신'(God)을 뜻하는 '데우스'(Deus)의 합성어다. 즉,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신이 된 인간'은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낱말이다. 지은이 유발 하라리는 기아와 역병, 전쟁을 가두는 데 성공한 인류의 다음 목표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망한다. 굶주림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신성하다고 믿는 인류가 손 놓고 앉아서 죽음을 받아들일 리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곧 생명 연장을 위한 투쟁이었으니 말이다.

◇더 평등한 세상이 올까?

우리가 살아생전에 불멸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죽음과 전쟁은 다가오는 시대의 주력산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생명공학이 인간의 수명을 대폭 연장하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업그레이드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전공학, 재생의학, 나노기술 같은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어 '불멸'에 대한 낙관적인 예언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인간이 2200년에는 죽음을 극복할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시점을 2100년으로 잡기도 한다. 대략 2050년쯤이면 은행 잔고가 충분한 사람들이 불멸을 시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10년에 한 번씩 '인체 기관 개조'를 통해 죽음을 10년씩 따돌리는 식이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에는 더욱 발전한 기술이 등장하고, 죽음에서 더욱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 그 혜택이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질까. 아니면 우리는 전례 없는 생물학적 빈부 격차를 목도하게 될까? 만약 그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간다면 생명공학이나 컴퓨터의 발달로 능력이 향상된 초인간과 평범한 인간 사이의 격차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격차보다 클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피엔스는 절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물질적 가난과 정치적 불안, 폭력의 위험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그만큼 더 행복해질까? 지은이는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가령 정치적 불안과 가난에 시달리는 페루, 아이티, 필리핀, 가나에서는 10만 명당 매년 5명 이하의 사람이 자살하지만, 스위스와 프랑스, 일본, 뉴질랜드 등 부유하고 평화로운 국가에서는 10만 명당 매년 10명 이상이 자살한다. 1985년의 한국은 비교적 가난했고, 독재하에 있었고, 전통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10만 명당 9명이 자살한 반면, 훨씬 잘살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지금은 10만 명당 매년 36명이 자살한다.

지은이는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 절대적 고통을 없애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며 "중세시대의 굶주린 농부를 기쁘게 하는 데는 빵 한 조각이면 충분했지만, 돈을 많이 벌지만 따분하고 과체중인 현대의 엔지니어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1990년대 미국인의 주관적 행복이 1950년대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 1990년대 일본인의 생활 만족도가 1950년대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볼 때, 물질적 충족과 행복 충족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때 만족하지 않는다. 실제와 기대가 일치할 때 만족한다. 조건이 나아질수록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인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조건이 확 좋아지면,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대치가 높아진다. 앞으로도 성취하면 할수록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책 '호모 데우스'는 오랜 세월을 거쳐 마침내 지구의 일인자가 되고,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인류가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의 전망을 담은 책이기에(미래 전망은 늘 어려운 일이기에), 철저히 과학적인 근거와 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은이는 자신의 전공인 역사학을 바탕으로, 심리학과 종교, 기술공학과 생명과학까지 총동원한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이 책은 인류가 21세기에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지은이의 예측이지, 그런 시도가 실제로 성공할지, 아닐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책은 총 1장 3부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책 내용 전체를 요약하며, 서문 역할을 한다. 인류가 기아와 역병, 전쟁을 어떻게 제압했는지 설명하고, 불멸과 행복, 신성을 추구하는 인류의 과제를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인류의 지혜와 지식, 존재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의 관계를 설명한다. 2부에서는 인류가 지난 1천 년 동안 이룩한 성과와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인간적 의미(믿음, 인본주의, 자유주의, 사회, 종교 등)를 돌아본다. 3부에서는 21세기 초 우리가 처한 환경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은이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있다. 전 세계 45개국에서 500만 부가 팔린 '호모 사피엔스'로 우리에게 낯익은 작가다. 630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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