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변방의 땅, 갈릴래아

춥지 않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더움을 느낍니다. 따뜻한 물보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습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감을 새삼 느낍니다.

시간이 흘러 주일이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주일인 '주님 승천 대축일'의 성경 말씀을 읽다가 한 지명에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그곳은 현재 이스라엘 땅인 '갈릴래아'라는 곳입니다.

오는 '주님 승천 대축일'의 독서(사도 1,1-11)에 '갈릴래아'라는 지역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통하여 이르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서 예수님과 만납니다.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그들에게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하고 말합니다.

'갈릴래아'는 성경에서 단순히 여러 지역 중의 하나, 어떤 지명을 가리키는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이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곳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들, 기적들, 많은 활동들이 갈릴래아 지역을 무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사람'으로 불리곤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뽑았지요.

그래서 '갈릴래아가 예수님 시대에 중요한, 중심 지역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중심 지역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중동의 팔레스티나를 이루고 있던 주요 세 지방(갈릴래아, 사마리아, 유다) 가운데서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던 '갈릴래아'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수도권이 아닌, 오히려 수도권에서 먼 지방이었습니다. 그러니 '갈릴래아'는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보자면 '변방'이었던 거지요. 예수님은 변방 지역 사람으로 불렸고, 그 변방에서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제자들을 뽑아 가르치고 함께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 변방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에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을 남깁니다(마태 28,16-20). 제자들은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에게서 유언과 같은 정말 중요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사명(使命)이 되지요. 시골뜨기, 곧 변방 출신에 거기서 살아왔던 이들인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교회의 시작이 맡겨집니다.

예수님에 의해 제자들에게 주어진,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전하는 삶은 갈릴래아, 그 변방의 땅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익숙한 자신들의 땅, 그리 중요할 것 없어 보이던 갈릴래아에서 새로운 삶을 출발합니다.

변방으로 돌아가고, 중심지가 아닌 변방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20년 수형 생활의 옥중 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 고(故) 신영복 교수는 오만하고 경직된 사유에서 벗어나는 길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변방에 대한 오해이다. 누구도 변방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문명도 변방에서 시작되지 않은 문명이 없다. 어쩌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변방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다름 아닌 자기 성찰이다.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변방을 찾아서'에서

요즘 들리는 우리 사회의 좀 더 좋은 모습의 새로운 출발을 보며, 나도 다시 새롭게 재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재출발은 대단한 것을 특별한 곳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을 나의 자리에서 다시 보고 다시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변방 갈릴래아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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