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기간 집안에서 나는 '빨갱이'였다. 그런데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는 촛불시위에 나가지 않은 경상도 아줌마라 '수구꼴통'이란다. 떼쓰는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는 '맘충'(엄마+벌레 신조어)이었다가 운전을 할 때는 '김여사'가 되고 커피값이 비싼 카페에 앉아 있으면 '된장녀'가 된다. 어느 날 문득 억울하다. 나에게 씌워진 수많은 프레임 중 어느 것 하나 나는 수긍할 수 없다. 나를 비롯한 내 주위에 누구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그들' 같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부모님은 전쟁 전후세대이다. 집안 어른이 6'25 전쟁에서 전사했고 양말을 덧대 교복을 수선해야 할 정도의 극심한 가난도 겪었다. 대북(對北) 정책에 관한 한 이분들의 강경한 태도는 조금도 양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 3(無)세대인 지금의 20, 30대는 안정된 직장에의 취업이 절대과제이다. 불합격 문자를 받을 때마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존재의 의미를 의심해야 하는 이들의 고통 역시 부모세대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평생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국민 7천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회 이상의 성폭력을 경험해봤다는 여성 응답자는 21.3%, 5명 중 1명꼴이었다. 피해자가 되더라도 '여지를 준 것은 아닐까' 의심을 받아야 하는 여자들의 고통을 남자들은 짐작할 수 없다. 여자들 역시 석기시대 사냥을 떠나는 원시인들처럼, 농경시대 밭을 가는 머슴처럼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은 나여야 한다는 남자들의 역사적 절대적 명제에 따른 부담감과 패배감을 온전히 느끼기는 어렵다.
한 개인에 씌워지는 수많은 프레임, 서로 향한 손가락질들. 작년, 30대 정신분열증을 앓던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억한다. 그는 살인 동기에 대해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댔다. 왜곡된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이처럼 위험해질 수 있다.
잘못된 프레임을 바로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통이다. 가공의 '그들'에 대항해 싸우려 하지 말고 지금 내 옆에 앉은 사람에게 미소로 시작하는 대화를 건네보자. 어느 시대나 어느 세대나 한 번뿐인 인생이라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거나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판단할 수 없다. 또한 어리다고 그 고통이 작다고 할 수 없고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현명한 것도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포석을 깔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내가 먼저 들어야 '그들'도 내 말을 듣는다. 서로의 말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프레임이 지워지면 '그들'은 '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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