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생활의 시각 Campus Now!] '의지'를 재충전하는 시간

참 바빴던 한 학기가 지나간다. 돌이켜보면 보람보단 후회가 많이 남는다. 잘하고 싶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 시작했던 일들도 결국 시간에 쫓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슬프고, 조금 더 부지런하지 않은 것에 자괴감이 든다. 일의 순위를 정하기보다 닥치는 일부터 해치워서일까? 해냈다는 뿌듯함보단 공허함이 크다.

얼마 전 학교에서 '스무 살의 인문학'이라는 강의를 통해 함성호 시인을 만났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그는 '우리 삶의 공간과 시간'을 주제로 강연했다. 불안과 불확실 사이를 걷는 대학생들에게 그는 그래도 된다고 다독여줬다. 그의 강연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역시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러 차원으로 구성된 우주엔 여러 시간이 있는데, 그중엔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다. 크로노스가 포세이돈이나 헤라를 잡아먹었던 것처럼 우리를 잡아먹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크로노스의 시간에 먹히며 그 시간 속에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들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지 않는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계획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서 나온다. 하지만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사는 우리에게 우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함 시인은 크로노스의 시간과 대적하기 위해 노자의 '천장지구'와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나는 안 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문법을 사용해 틀을 깨는 사고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고, 그 일을 기꺼이 해낼 의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하고 있기에 그 시간이 괴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그 많던 일을 하고 싶어 했으면서도 시간에 쫓겨 괴로워했던 것은 역시 '의지'가 고갈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이 시기에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는 데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기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자기'를 위해 사는 인생이어야 한다. 곧 여름방학이다. 많은 청춘이 여행도 가고, 휴식을 취하며 '의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이 가득한 시간을 계획하기보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방학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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