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세상 아내에게 박지원
잠시 이별 하나 했네, 영원한 이별인데 同床少別已千年(동상소별이천년)
먼 하늘 구름 너머, 그 너머를 바라본다 極目歸雲倚遠天(극목귀운의원천)
어찌 하필 오작교를 건너야만 만나리까 後會何須烏鵲渡(후회하수오작도)
은하수 서쪽 달이 조각배와 같은 것을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원제: [도망(悼亡; 죽은 이를 애도함)]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남긴 작품 가운데 '여인'(與人: 어떤 사람에게 줌)이라는 편지글이 있다. 우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는 그 글에서 연암이 한 말을 내가 좋아하는 시조라는 그릇에다 가감 없이 옮겨 담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될 터다.
"아내와 벗 가운데 어느 편이 더 귀한가?/ 당연히 벗보다는 아내가 먼저라고?/ 천만에, 아내 따위가 어찌 벗을 따를라고// 아내야 죽고 나면 새 장가를 들면 되지/ 두세 번 새 장가를 다시 가도 좋은 거고/ 서너 명 첩을 둔대도 안 될 일이 무에 있어// 깨어진 그릇 따위를 새것으로 바꾸듯이/ 늙고 헌 아내를 새 아내로 맞바꾸면/ 새 아내, 헌 아내보다 더 좋기가 십상이지// 하지만 벗이 죽으면 그 누구와 맛을 보며/ 보고 듣고 향기 맡고 그 누구와 같이하나/ 게다가 대체 누구와 내 마음을 나눌 건가"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진보적 선각자로 널리 알려진 참으로 걸출한 문인 연암이 정말 이런 말을 했단 말인가. 몽둥이로 뒤통수를 난데없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바로 그 연암은 쉰한 살 때인 1787년, 35년 동안이나 수저를 같이 사용했던 정든 아내를 저 아득한 하늘로 떠나보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죽음을 슬퍼하는 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도 막상 희로애락을 평생토록 같이한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는 거의 없었던 흑백의 시대! 바로 그런 시대에 연암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무려 스무 편이나 남겼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위의 시다. 새삼스럽게 분석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이 아내를 잃어버린 망연자실의 막막함과 간절한 그리움이 가슴 뭉클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런 시를 남긴 시인답게 연암은 그 후 18년 동안이나 혼자 살다가 은하수에 떠 있는 조각배를 타고 아내의 뒤를 따라갔다. 그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새장가를 들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누구나 두던 그 흔한 첩조차도 둔 적이 없었다. 편지글의 내용과는 완전 딴판이니, 모순이라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깨어진 그릇 따위를 새것으로 바꾸듯이/ 늙고 헌 아내를 새 아내로 맞바꾸면/ 새 아내, 헌 아내보다 더 좋기가 십상"이라던 그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도무지 모르겠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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