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진(가명'53) 씨는 물 한 잔 마시기도 힘들어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두 달 전부터 항암화학요법을 받으며 입 안이 모두 헐어버린 탓이었다. 김 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병원을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친구들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볼이 홀쭉해진 김 씨의 얼굴을 본 뒤에야 "착하기만 하던 네가 어찌 이런 몹쓸 병에 걸렸냐"고 마음 아파했다.
그래도 김 씨는 "지금도 감사하다"고 했다. "내가 이 정도 아팠으니 다행이지, 만약에 내가 애들 놔두고 죽기라도 했으면 애들이 어떻게 됐겠어요."
아들(19)과 딸(18)은 김 씨 앞에서 울지 않았다. 오히려 씩씩하게 웃으며 "엄마는 꼭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딸은 김 씨가 투병한 이후 빨래나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맡고 있다. "제가 집안일을 할라치면 딸이 호들갑을 떨며 만류해요. 참 기특하죠."
◆아버지 모시고 봉사하던 착한 삶
김 씨는 "내가 목숨을 구한 건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덕"이라고 했다. 홀로 살던 아버지는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는 일이 잦았고, 다른 형제들을 대신해 김 씨가 7년간 돌봤다. 오빠와 살고 싶어하던 아버지는 "딸이 점심밥도 안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오빠 집을 찾아갔다. "같이 사는 내내 아버지와 투닥거렸는데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턴 매일 제 걱정만 하시더라고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저를 지켜주고 있나 봐요."
김 씨는 3년 전 이혼했다. 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는 아들과 딸 때문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조금만 신경에 거슬리면 욕설을 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아이들은 남편을 두려워했고 집 밖을 방황했다. 전 남편은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았고, 김 씨는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김 씨는 남 돕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무료급식소에 나가 일손을 보탰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지인들은 지금도 아픈 김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김 씨를 위해 공기청정기와 식기소독기를 사주고, 가끔 찾아와 집안일도 도와준다. "사실 제가 남을 도울 때는 제가 도움받을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열심히 돕다 보니 되레 도움을 받는 경험을 하네요."
◆병원비 부담에 집 팔고 원룸 갈 처지
지난 3월 김 씨를 찾아온 독감은 한 달이 넘도록 낫지 않았다. 입 안이 모두 헐어 죽조차 삼킬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대학병원을 찾은 그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 길로 무균실에 입원해 한 달가량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고 보름간은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골수검사를 한 후에는 극심한 통증 탓에 나흘 동안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오면서 퇴원을 했지만 앞으로 2년간은 항암제를 먹어야 한다.
그래도 김 씨는 "기운을 좀 차리면 내년이라도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생인 두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진 제 손으로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런 김 씨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두 자녀는 김 씨에게 "용돈 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김 씨는 수백만원의 병원비는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하고, 생활비는 지인에게 빌려 쓰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저곳에서 빌린 돈만 벌써 500만원을 헤아린다. 수년 전 1억원에 집을 사면서 대출받은 7천만원의 이자도 갚지 못해 당장 이사를 가야 할 처지다. "집을 팔고 남는 3천만원으로 원룸 전세라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세 식구가 살긴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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