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본료 폐지 빠진 통신비 인하안…업계·시민단체 "실망"

정부의 통신비 인하안이 윤곽을 드러내자 통신업계와 시민단체 모두 불만스러운 반응이다.

통신업계는 기본료 폐지가 당장 시행될 가능성이 줄어든 데 안도하면서도 전체적인 정책 방향이 규제 강화로 가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시민단체들은 국민 부담 경감이라는 애초 대통령 공약 취지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한 달 가까운 논의 기간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도 업계와 시민단체를 가리지 않았다.

◇ 기본료 폐지 장기화…업계 '안도' 시민단체 '공약 후퇴'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본료 폐지는 전날 미래부의 4차 보고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개호 경제2분과 위원장은 업무보고 뒤 "기본료 폐지는 자율사항으로 통신사의 협조가 필요한 문제"라며 "기본료 폐지를 못한다면 그것에 준하는 방안을 찾아내 여러 계층이 두루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그림"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4G 포함 기본료 일괄 폐지보다는 단계적 폐지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기본료 1만1천원 중 일부만 우선 폐지하거나 취약계층에 한해 없앤 뒤 장기간 단계적으로 폐지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장기적 검토는 국정위 활동 시한이 있어 우리가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혀 당장 결론 나기가 어려워 보인다.

기본료가 당장 폐지될 가능성이 줄면서 통신업계는 큰 고비를 넘겼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다.

통신사 관계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업계와 협조를 얻기로 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국정위가 기본료 폐지에 상응하는 대안을 찾겠다고 한 만큼 다른 인하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기본료 폐지를 요구해온 시민단체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명확한 공약 후퇴"라며 "대통령 공약의 핵심인 기본료 폐지가 제외되면 국민의 통신비 인하 체감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요금할인 확대·보편 요금제 도입…미래부 권한 확대 논란

기본료 폐지에 이어 가장 관심을 끈 방안은 요금할인율 인상이다.

2014년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도입된 요금할인은 약정 기간 통신비를 할인해주는 제도다.

현재 검토 중인 방안은 미래부 고시 개정을 통해 요금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이는 것이다.

25% 요금할인은 LTE 데이터 요금제에서 기본료(1만1천원) 폐지 이상의 할인 효과가 기대되지만, 통신업계는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반발한다. 25% 할인 시 통신업계가 추정한 연간 매출 손실액은 최소 5천억원 이상이다.

요금할인 확대가 단통법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금할인이 애초 공시지원금을 받는 소비자와 차별을 막기 위해 지원금에 상응하는 혜택을 준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만큼 현행 지원금 체계에서 할인율 상향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미 지원금의 할인 수준은 요금할인보다 낮다"라며 "요금할인율이 더 올라가면 지원금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시 개정을 통한 할인율 인상 방식이 미래부의 지나친 권한 행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 역시 '규제 강화 조치'라는게 업계의 평가다.

현재 유력한 요금제는 300MB를 기본 제공하는 현행 3만원대 데이터 요금제보다 1만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데이터 1GB를 기본 제공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 이용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약 6.2GB이고, 무제한 요금제를 쓰지 않는 가입자는 1.8GB인 점을 고려한 수준이다.

현행법에서는 이통사에 요금제 출시를 강제할 수 없어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하려면 근거 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미래부도 전날 보고에서 입법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미래부 장관이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의 기준을 고시하고, 통신사가 이용 약관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안이 통과되면 미래부가 요금을 설계할 법적 권한을 부여받는다.

통신사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기업의 가격 체계에 개입하는 방식은 반(反)시장적"이라며 "과도한 시장 개입은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시민단체는 부처의 권한 확대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근본적인 시장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안진걸 사무처장은 "통신사업은 기본적으로 민간 기업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하는 규제 산업"이라며 "정부 규제로 시장 진입이 제한된 상태에서 통신사들이 혜택을 누려왔는데 이제 와 규제를 강화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ICT정책국장은 "국정기획위의 공약 이해도와 정책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아 통신비 공약이 미래부의 권한 키우기로 이어지고 있다'며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의 참여 아래 명확한 근거 조항을 마련해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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