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26> 목공예 명장 권수경 씨

"다기, 꼭 도자기여야 하나?" 발상 전환이 목공예 거목으로

권수경 명장이 자신이 제작한 다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수경 명장이 자신이 제작한 다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화
영화 '관상'에 나왔던 권수경 명장의 다기.

권수경(62) 씨는 나무로 공예품을 제작하는 목공예 명장이다. 고교 졸업 후 이 일을 시작했으니 어언 40년이 넘었다. 권 명장은 전통문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 풍조 때문에 홀대받는 이 길을, 명예와 부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좋아해서 올곧게 걸어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일터이자 창작의 산실인 공방 '예심'(대구 동구 불로동) 마당에는 나뭇더미가 여기저기 비닐을 뒤집어쓴 채 세월을 삭이고 있다. 권 명장은 오늘도 작업실에서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목공예는 나의 운명

권 명장은 1955년 경북 칠곡 가산에서 태어났다. 권 명장의 나이 6세 때 식구를 데리고 대구로 나온 아버지는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 "집안이 그렇게 되고 보니 어린 마음에 방황하며 공부도 소홀히 했다"고 했다. 야간 고교에 입학했다. 목공예에 뛰어든 것은 그때였다. "등하굣길에 있는 가구제작소에 들어가 보니 꽃과 호랑이, 십장생 등 별의별 모양을 한 조각 작품이 눈에 띄었다. 하도 신기해 직접 만들고 싶어졌다"고 했다. 졸업 후 가구제작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청소와 사포질만 했다. 주인과 선배들은 3, 4년 지나서야 비로소 조각칼 가는 법을 가르쳐줬다. "가끔 성깔 있는 선배로부터 조각칼로 머리를 맞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야말로 어깨너머로 조각하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래도 손재주는 있었나 봐요. 어릴 때 새총이나 앉아서 타는 스케이트를 곧잘 만들었거든요."

1993년 불로동에 공방 '예심'을 차렸다. 당시 불로동은 나무로 만든 관광기념품 70, 80%를 제작했을 만큼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곳. 권 명장은 공방 대표 20여 명과 함께 '나함'(나무와 함께하는 사람들 모임)을 결성했다. "가구, 목공예, 나전칠기 등을 하는 분들로 조직한 모임이었는데,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장승, 염주 만들기 등 체험행사도 여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은 권 명장의 편이 아니었다. 값싼 중국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주문이 줄었다. 조각가들은 건축, 실내장식 등 다른 직업으로 전환했다. 공방 문을 닫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런 와중에 IMF가 터졌다. 고민했다. 그냥 접을 수는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다기(茶器'차를 담고 마시는 데 사용하는 도구)였다. 다기는 보통 도자기로 만들지만 나무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다들 "미쳤다"면서 "정신 나간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권 명장은 도전했다. 잘 건조된 나무를 정교하게 디자인한 뒤 속을 파내고 옻칠을 했다. 겉에는 연꽃, 용, 십장생 등을 새겨 품위를 더했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가 만든 다기는 금'은 공예품의 화려함을 뛰어넘어, 중후하면서도 푸근한 멋을 풍겼다. 목재만이 낼 수 있는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에 촉감까지 좋았다. 차 맛도 좋았다. 권 명장은 "나무로 만든 다기는 촉감이 좋을 뿐 아니라 열전도율이 낮아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괜찮아 보였던지 스님들이 많이 구입해 가는 등 반응이 괜찮다"고 했다.

권 명장은 아무리 작은 소품이라도 일일이 도안을 그려 제작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엔 똑같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 십장생이 새겨진 차칙, 연꽃 위에 개구리가 앉아 있는 문양, 연잎 모양의 차 받침까지 문양도 다양하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2000년 목공예 부문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그가 제작한 다기는 영화에도 나왔다.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가 차를 마시는 장면에 나오는 다기는 권 명장이 협찬한 것이다.

◆나무의 모든 것 알아야 원하는 작품 나와

권 명장은 돈은 안 되지만 창작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수십 가지 물건을 만들어도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하는 일마다 새로운 창조이다. 그 매력에 이끌려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권 명장은 차 도구를 전문으로 만드는 공예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기는 조각이 끝난 다음에도 다시 옻칠을 몇 번 반복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더딘 작업이다. 모든 장인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그의 이런 성품은 작품에 쓰일 목재를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구하기 힘든 주목이나 박달나무'대추나무'괴목'은행나무 같은 재료를 어렵사리 구해서 비와 눈, 이슬을 맞게 하고 햇볕과 그늘에서 자연스럽게 건조시키며 때를 기다린다. 최소한 몇 년을 말린 뒤에야 비로소 작품에 쓰일 만한 재료가 되는 것이다. 권 명장은 평생 쓸 나무를 모아뒀다고 했다. "저는 조각을 하기 때문에 나무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 명장은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부터 기본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자르고, 깎고, 사포질하고 칠해야 나무 원래의 감촉과 속살, 결이 살아납니다." 나무의 진면목을 보려면 세월의 질곡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권 명장은 40년 이상을 인내로 일관하며 무생물인 나뭇조각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왔다. "박달나무는 야물어 충격을 가하면 깨지고 부러져 찻상이나 다식판 등 큰 작품에 사용하고, 대추나무는 나이테가 없어 조각이 용이해 정밀한 작품에 맞다. 작품을 만들면 멋이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무마다의 고유한 특징을 만나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나무의 결과 빛, 향이 저마다 다른 나무의 쓰임새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무의 특성에 따라 다관(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이나 차탁'차칙 등 다기에 연꽃, 용, 개구리, 잠자리, 십장생 등을 조각해 완성한다. "잠자리나 개구리를 연잎에 붙여 자연의 한 토막을 그대로 차 도구에 옮겨놓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공예 아끼고 지켜주는 배려 아쉬워

권 명장에겐 제자가 없다. 수입이 많지 않아 배우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목공예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공방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값싼 제품이 대량 수입돼 지금은 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권 명장은 그러나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 그리고 이 일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좋아서, 또 죽은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내 일이고 내 인생이기 때문에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명장은 요즘, 아침에 출근해 해가 질 때까지 오로지 작품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작품 하는 동안 아무 생각이 없다. 비행기 이착륙하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제작에 몰두한다"고 했다.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권 명장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학생이나 주부, 퇴직한 분에게 목공예를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기관이나 독지가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권 명장은 힘들고 어렵지만 목공예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남은 인생 동안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는 보존해야 할 또 다른 유산"이라며 "어느 한 시점에 불쑥 솟아날 수 있는 게 전통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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