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언영색(巧言令色)을 몸에 익혀라. 족공(足恭)을 존중하라. 그렇지 않으면 격변기의 신하로서 살아남지 못한다." '한비자'에 나오는 말이다. 잘 알려진 한자성어인 교언영색은 잘 다듬은 말과 용모로 남에게 좋게 보이는 것을 뜻한다. 족공은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거나 굽신거리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교언영색과 족공은 좋은 뜻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런데도 한비(韓非)가 이런 처세를 강조한 것은 이런 몸가짐이 수치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로써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존의 관념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이 중요하다는 그의 사상과도 맥락이 닿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생각과 태도가 출세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되거나 자기 입지를 세우는 방편으로 쓰이면 어떻게 될까. 더 지켜보지 않아도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혼탁해질 것이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판이나 공직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국정 농단 사태는 교언영색과 족공의 위력을 재확인한 정치 사변이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권력 엘리트들이 형편없이 무너진 배경에는 어떻게 사느냐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에 더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그제 언론이 보도한 최순실의 '관세청장 인사 개입설'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천홍욱 청장이 최 씨를 만나 "실망 안 시키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는 사실 여부를 떠나 차라리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민망한 일이다.
벌써 한 달을 넘긴 총리와 장관 인사청문회도 낯 뜨거운 일의 연속이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크고 작은 흠들이 드러났다. '허위 혼인신고'라는 암초에 걸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낙마했다. 이번 주 청문회도 순탄치 않을 것 같다. 김상곤 사회부총리와 송영무 국방장관, 조대엽 고용부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논문 표절에서부터 거액의 고문'자문료, 음주운전과 거짓말 논란까지 교언영색과 족공이 심각해서다.
일각에서는 "세종대왕도 이순신도 이런 청문회는 통과가 어렵다"는 말로 방어 논리를 편다. 물론 흠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흠이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몸에 익은 결과라면 더 생각해볼 여지가 없다.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 재거나 버티지 말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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