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금쪽같은 단비가 내렸다. 사람도, 곡식도, 가로수도 타는 목마름 끝에 맛보는 단비였다. 도시 사람들이야 폭염 걱정뿐이지만 시골 사람들에겐 농사 명운이 달린 극심한 가뭄이 큰 문제였다. 올해 평균 강수량이 1973년 이후 최저치라고 하니 농민들의 속이 얼마나 탔을까.
밭작물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숨죽인 채 버티기 모드로 연명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긴 의문이 있다. 그 많은 4대강 물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물그릇을 키워 자연재해에 대비하겠다던 4대강이 이번 가뭄에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4대강 인접지역은 옛날부터 가뭄을 모르던 곳이었다. 가뭄이 심한 곳은 대부분 4대강과 거리가 한참 떨어진 지역이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정부도 이런 엇박자를 모를 리 없었다. 22조원이 들어간 4대강에 1조1천억원을 추가로 들여 농경지에 공급하는 도수로 20개를 건설키로했다. 하지만 비판 여론과 경제성 논란으로 도수로 공사는 겨우 2곳만 추진됐다. 지금 완공된 도수로는 금강 백제보에서 보령댐을 연결하는 21.9㎞가 유일하다.
충남 서부지역 가뭄과 식수를 책임지는 보령댐은 이 가뭄에 금강 물을 도수로를 통해 손쉽게 공급받고 있으니 4대강 사업 혜택을 제대로 맛보는 셈이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1급수였던 보령댐에 예전에 없던 녹조가 확산된 것이다. 2급수의 금강 물 녹조가 그대로 유입된 탓이었다. 보령댐은 이제 수질과의 전쟁을 벌이게 됐다.
녹조는 4대강에 단골 불청객이 됐다. 그러나 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를 열고 물을 흘려 녹조를 막으라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도 없게 됐다.
문재인정부 들어 4대강 16개 보 가운데 6개 보 방류가 전격 결정됐다. 방류 결정을 하고 보니 이번엔 양수장이 문제였다. 4대강 사업으로 취수구가 종전보다 높게 설치돼 수위를 조금만 낮춰도 양수장에 물 공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수제약수위까지 겨우 평균 69㎝ 정도 수문을 열었다. 유속이 안 나오니 녹조는 꿈쩍도 않았다. 환경단체는 보를 더 열어라 하고, 농민들은 이 가뭄에 무슨 짓이냐고 아우성쳤다.
환경부는 4대강에 설계된 양수장 취수구를 더 낮추는 방안을 찾고 있다. 취수구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600여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야 할 판이다. 4대강 어도(魚道) 역시 마찬가지 신세다. 만수위 수준이 아니면 어도에 물이 흐를 수 없도록 설계돼 재공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비용은 또 얼마나 들까. 모두 속도전으로 건설한 4대강 후유증이다. '한반도 대운하사업'으로 큰 그림을 그렸다가 급히 '녹색 뉴딜사업'으로 턴하면서 스텝이 꼬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환경부는 4대강 보 구조를 개선할지, 물그릇을 포기하고 보를 철거할지를 내년 말까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가뭄에 대비하자니 '보 철거' 목소리가 따갑고, 수질을 개선하자니 '보 존치' 눈초리가 매섭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4대강 수문을 개방하고, 재평가를 거쳐 재자연화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환경단체도 보 해체를 본격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보 해체도 녹록지 않다. 독일 뮌헨을 가로지르는 이자르강은 8㎞를 재자연화하는데 10년이 걸렸다. 자연에 수없이 물어보고 허락을 받은 끝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보 해체도 갑자기 정치적으로 뚝딱 해치울 일은 아니다.
4대강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4대강으로 흘러드는 오염원을 차단, 저감하는 대책이 먼저다. 또 물그릇을 조금 비워서라도 강 언저리에 습지를 조성해 자정 능력도 키워야 한다. 수량(水量)보다 수질(水質)이 해법이다. 수질을 잡지 못하면 후유증은 계속 꼬리를 물게 된다. 곧 낙동강 물을 끌어와 흘려보낼 대구 신천도 보령댐처럼 녹조 홍역을 치를지도 모른다.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