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화의 성공 조건

국제사회에서 힘의 배분 문제의 선결 없이 국가 간 정치'외교적 대화가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1932년 제네바 세계군축회의는 좋은 예다. 이 회의는 1932년 2월부터 1934년 5월까지 2년여를 끌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그 이유는 1차 대전 승전국 프랑스와 패전국 독일의 속셈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 회의를 통해 베르사유 조약 체제란 현상을 유지하고, 독일의 재무장에 맞서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반면 독일의 목적은 베르사유 조약이 강요한 2류 국가라는 현상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독일이 요구한 것은 군비(軍備)에서 프랑스와의 평등이었다. 이는 상호 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목표였다.

독일에 프랑스의 요구는 1차 대전의 패배로 강요된 군사력의 열세를 영속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강대국으로 재부상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프랑스 입장에서 독일의 요구는 1차 대전 승전으로 얻은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고 독일의 부상을 묵인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군비 비율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주도권 쟁탈이었다. 이는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다. 군축회의는 여기에 접근도 못 했다. 실패는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적국끼리도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1979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修交)다. 1971년 양국 탁구선수단의 교차 방문 즉 '핑퐁외교'가 그 결정적 계기라고 하지만. 그럴듯한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양국에는 소련이란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토대가 없었는데도 '핑퐁외교'가 가능했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어려웠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제안에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환영한다며 "관련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냉랭하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스포츠에 앞서 정치 지반이 먼저 다져져야 한다"고 했고, 바흐 위원장의 발언에도 "쉽지가 않다"고 했다. 다른 꿍꿍이가 있겠지만, 국제 정치를 보는 눈은 문 대통령보다 더 밝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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