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삶은 숭고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피곤했다. 급기야 신발을 신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부어서 계단에 올라갈 때마다 손으로 다리를 잡아 올려야 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즈음 동료에게 물었다.

"피곤하지 않나요?"

이 말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현재 어디가 얼마나 아프고 피곤한지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급기야 무슨 약을 먹는 것이 피로를 극복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좋은가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일을 줄이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몇 년째 연달아 고3 담임을 맡고 있는데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를 뒤로하고 운동을 하려고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장암 3기입니다. 종양 크기가 14㎝나 되는군요."

무수히 많은 날 끊임없이 몸은 내게 신호를 보냈건만 나는 한 번도 몸의 신호에 반응하지 않았다.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기에 내 몫만큼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다른 것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족과 친구, 이웃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철저히 배신당했다. 의사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병든 몸 앞에 행복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이 무너졌다. 화가 났다. 너무나 젊은데.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는데.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내 앞에 삶이 무한정 많으리라 생각하고 그동안 미뤄 두었던 많은 것이 어느 순간 갚을 길 없는 부채로 다가와 당혹스러웠다. 분노와 후회, 안타까움과 서러움의 시간이 흘러갔다. 수술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집 옆 공원에서 우연히 작은 음악회를 구경하게 되었다. 간이 무대 앞 플라스틱 의자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은 공연보다는 모처럼 만난 이웃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바빴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아니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살포시 날리고, 익숙한 사람들과 이름 모를 성악가의 노래가 들리는 너무나도 사소한 풍경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하염없이 울고 웃었다.

카르페 디엠.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거저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순간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살펴야 한다.

지금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독서와 인문교육을 나눈다. 목적지에 닿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풍경을 살피는 삶, 풍경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독서와 인문교육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그런 삶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

9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바쁘고 때론 피곤하다. 그때처럼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불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삶은 숭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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