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분수가 없으면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국가 예산 들여 일자리 창출은 과오

나라 경제는 조만간 병들게 뻔한 일

文 대통령 귀국하면 생각 달라질 듯

선거공약 밀고 나가기 어렵기 때문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를 분수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분수가 없는 사람'을 보고 '분수'라고 하게 되었을까? 어쨌건 이 세상을 둘러보면 분수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호화주택이나 고급 외제 승용차를 선호하는 사람들 중에는 수입이 엄청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서도 집이나 승용차는 최고로 선택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런 살림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분수'라는 말이 '푼수'라고 쓰이게 됐는지도 잘 모르겠으나 '푼수'라는 낱말은 욕으로밖에는 쓰이지 않는다. 수입이 몇 푼 되지도 않는 가장이 어린 아들'딸을 조기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까지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볼 때 푼수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능가하게 된 지는 오래다.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가 지출하는 엄청난 교육비는 우리나라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왜 가계부채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가. 분수를 모르는 해외여행이나 김영란법은 아랑곳없이 고급 식당에서 대접을 하고 비싼 선물을 사서 바치는 악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분수를 모르고 크게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큰 빌딩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해도 되는데 크게 시작하여 몇 달 뒤에는 대개 문을 닫게 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엄청난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분수를 모르는 과오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공황 같은 경제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뉴딜 정책' 같은 특단의 조치를 한 선례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의 한국적 경제 침체를 치유하기 위해서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정부 예산을 대량 투입한다면 국가 경제가 조만간 병들고 말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 아닌가.

대통령이 나서서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은 기상천외의 착상이다.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이 다 제구실을 해서 잘 굴러가면 거기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지 공무원을 몇만 명 더 모집하여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일종의 기만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모든 기업들이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기업의 팔다리를 마음껏 펼 수 없다는 것을 정부가 잘 알면서도 경제 침체의 책임을 기업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것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정부가 기업의 연간 수익에 대한 적절한 세금만 책정하고 받아내면 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정권과의 거래가 부당하다고 우기면서 기업의 총수를 수감하여 꼼짝도 못하게 하는 처사도 반성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간의 미국 방문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하여 요직에 앉은 미국 지도자들을 면담하고 돌아오면 미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일들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군사 동맹국인 미국을 향해 'NO'라고 할 만한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선 전에 그는 당선되면 북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먼저 만나겠다고 공약했으나 그런 일들이 모두 실행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의 의식구조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내다보고 있다. 미국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대선 공약대로 다 하지 못해도 대한민국을 번영된 평화로운 민주공화국으로 만들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선거전 공약에 무리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땅에 각종 노조도 반성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누울 자리를 보면서 다리를 뻗어라'라는 속담이 있는데 "재벌을 해체해라" 또는 "시간당 1만원 최저임금제 즉시 실시하라"는 등의 구호는 다분히 반성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우선 기업을 크나 적으나 살리고 일자리를 늘려야지, 그리고 노임을 올려야지 기업이 다 망한 뒤에 노조의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각계각층의 지각 있는 지도자들이 나타나 분수를 알고 처신해야만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