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대통령의 용인술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같으면 명예훼손이라 난리가 났을 이런 말을 한 이는 미국 링컨 대통령 시절 전쟁장관을 지낸 에드윈 스탠턴이다. 링컨은 공화당, 스탠턴은 민주당 토박이였다. 스탠턴은 턱수염을 기른 링컨을 '원조 고릴라'(original gorilla)라며 모욕하기 일쑤였다. 그의 비난은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그(링컨)가 당선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링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탠턴을 전쟁장관에 임명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측근들이 경악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적임자라고 본 것이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1865년 4월 출장 후 워싱턴으로 돌아온 링컨을 끌어안고 남북전쟁 승전보를 전한 것은 스탠턴이었다.

정치적 이유로 박한 평가를 받지만 전두환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우리나라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살림이 거덜난 상황에서 박정희가 쌀과 솥, 땔감을 구해 밥 지을 준비를 마쳤다면 전두환은 쌀을 깨끗이 씻고 물을 적당히 부어 차진 밥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에 문외한이었다. 스스로 무식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부족한 자리는 인재로 메웠다. 미 스탠퍼드대 박사 출신 김재익 씨를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하며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취임 당시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던 경제성장률은 1987년 말 12.8%로 세계 1위의 고도 경제성장을 구가했다. 28%에 이르던 인플레이션은 임기 말 3%까지 떨어졌다. 44억달러에 이르던 무역 적자는 114억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전두환은 사람을 볼 줄 알고 쓸 줄 아는 지도자였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람 보는 눈을 키우지 않아서 망했다. 취임 초부터 '수첩 공주'라 불린 것부터가 불길했다. 쓰는 사람 하나하나가 '어찌 저런 사람을' 하는 탄식이 정권 초부터 나왔다. 스스로의 안목 없이 수첩에 이름이 올랐던 인물들이 결국 그녀를 파멸로 이끌었다. 인재를 보는 눈을 기르지 못해 몰락한 대통령은 수두룩하다.

그렇다 보니 인재를 고르는 눈을 지도자의 덕목으로 강조한 선조들의 조언은 차고 넘친다. 베이컨은 "정치 지도자는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내는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자는 "정치란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를 뽑는 것"이라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 서고에도 꽂혀 있었다던 '반경'(反經)의 저자 조유는 "사람을 아는 것이 군왕의 길이고, 일을 아는 것이 신하의 길"이라 했다.

물론 인재를 고르는 일이 말처럼 쉬울 리 없다. 능력만 보자니 도덕성이 문제고, 도덕성이 맞으면 능력이 문제다. 숨은 인재 발굴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검증되지 않은 만큼 위험성도 크다. 그렇다고 '구관이 명관'이란 말에 마냥 기대고 있을 수도 없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지도자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각 구성을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김상곤(교육부장관) 송영무(국방부장관) 조대엽(고용노동부장관) 등 세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고민이 깊다. 셋은 문 대통령 스스로 정했던 5대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청문회 과정에서 거짓 해명 논란 등으로 도덕성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대통령이 걸어야 할 길은 분명하다. '5대 원칙'을 포기했다면 새로운 인사 원칙이 나와야 한다. 어렵지 않다. 내가 쓰고 싶은 사람을 버리고, 국민이 쓰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편안하게 해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인재라면 '내 편'이 아니어도 괜찮고, 대통령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면 더 좋다.

조유가 말했다. "제왕이 될 자는 스승 같은 사람을 신하로 삼고, 폭군이 될 자는 굽신거릴 자를 신하로 삼는다." 문 대통령은 스승 같은 신하를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