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名匠)은 '이름난 장인(匠人), 명공(名工)'을 의미한다. 특정 분야에서 평생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최고 영예다. 15년 이상 외길을 걸어온 숙련기술인 가운데 최고 기술'기능을 발휘하고 산업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고 인정받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대한민국 명장'이란 타이틀이 주어진다.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 게재해 온 '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시리즈는 '명장'들의 인생 스토리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기술자를 양성하는 마이스터고를 보다 활성화시키고, 기술을 배워도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년 실업이 화두가 된 이 시대에 이 시리즈가 '명장'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616명 명장 중 대구경북 88명
대한민국 명장제도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1986년 전국기능경기대회의 명장부 경기에서 1위 입상자에게 명장 칭호를 부여한 것이 시작이다. 처음 24개 분야 170여 개 직종에서 명장을 선정했으나 2012년 22개 분야 96개 직종으로 통폐합해 운영하고 있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15년 이상 관련 산업 및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술인 중에서 선정된다. 그런 만큼 비슷한 형식의 숙련기술전수자, 우수숙련기술자보다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업장 소재지 지방자치단체장, 해당 직종 관할 행정기관장 등의 추천을 받아야만 신청이 가능하다. 심사는 기능경기대회 입상 여부, 국가기술자격 취득 등의 기술보유 정도와 업무 실적, 대외활동 등을 검토하며 명장 자질을 묻는 면접을 통해 이뤄진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면 대통령 명의의 명장 증서'휘장'명패를 받는다. 또한 일시장려금 2천만원과 동일 직종에 계속 종사할 경우 매년 200만~400만원 상당의 계속종사장려금을 지급(종사기간에 따라 차등지급)받는다. 여기에 해외 산업시찰 기회를 얻는다.
1986년 용접 직종 박동수 1호 명장이 나온 이래 지난해까지 31년 동안 총 616명이 '명장' 자격을 얻었다. 대구경북에선 대구 47명, 경북 41명 등 총 88명이 명장 칭호를 받았다. 대구에서는 1988년 이해득(전기공사) 씨, 경북에선 1988년 조규택(전자기기제작) 씨가 각각 1호 명장으로 선정됐다.
명장들은 자신의 일 외에도 후학 양성을 위한 기술전수 교육도 한다. 청소년 직업진로지도 사업에 강사로 참여해 숙련기술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한편 중소기업,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등에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한다. 이 밖에 자신의 기술을 재능기부하는 농어촌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내년부터 유사 직종 통합, 새로운 직종 신설…37개 분야 97직종으로 개편
명장 제도는 산업기술 변화에 따라 내년부터 대대적으로 바뀐다. 유사한 직종은 통합하고, 산업 수요가 적은 직종은 폐지된다. 기존 22개 분야 96개 직종에서 37개 분야 97개 직종으로 개편된다. 직무 범위가 유사하고 현장에서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는 일부 직종은 통합된다. 기계정비와 농업기계정비, 중기계정비, 건설기계는 '기계정비'로 합친다. 최근 10년간 신청자가 없고 산업 수요가 적은 광산보안, 시추, 포장 직종은 폐지한다. 최근 5년간 신청자가 없거나 극소수였던 물류관리, 피아노 조율 등의 직종도 없어진다. 대신 산업기술 변화에 따라 신기술 및 고숙련 인력 수요가 증가하고, 신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나노기술, 빅데이터, 로보틱스, 자동차튜닝 등 12개 직종이 신설된다.
선정기준도 개선된다. 기존 직종별 선정에서 분야별로 변경하고, 서류심사 평가 항목을 간소화한다. 심사단계별 컷-오프(cut-off)제를 도입해 서류심사 70점 이상자 전원을 현장심사 대상으로 확대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개편안은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명장 직종 정비, 우수숙련기술인 상호 간 경력 경로를 제시하는 등 시의적절하게 대한민국 명장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으로 숙련기술인들이 우대받는 능력중심사회로의 저변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명장에 대한 관심과 예우 필요
명장은 매년 선정하고 있지만 적격자가 없으면 뽑지 않을 정도로 상위 1% 이내의 해당 분야 '달인'이다. 문제는 명장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을 지정만 하지 말고 사후관리에도 철저를 기해 기술자들을 예우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988년 대구 최초 이해득 명장은 "당시엔 정말 대단했다. 명장이 되면 대통령이 직접 시상하고 영화관의 대한뉴스에도 나왔다"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카퍼레이드도 펼치고 지금과는 격이 달랐다"고 말했다. 명장 제도가 처음 생겼을 때는 한마디로 국민적 영웅이었던 것. "그랬던 명장의 위상이 지금은 초라하게 떨어졌다"고 했다. 이 명장은 "2000년 들어 IT 업종이 각광받다 보니 제조업에 대한 처우와 관심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명장들은 이구동성으로 돈보다도 명장에 대한 대우와 사회적 관심이 떨어진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체에 근무했던 분은 명장 신청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신청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관련 서류를 다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어렵게 명장이 됐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했다. 매년 장려금이 나오긴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경우 이마저도 끊긴다. 기술 명장의 경우 퇴직하면 장려금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취직해 기술을 전수하려 해도 마땅히 불러주는 데가 없다. 퇴직한 한 명장은 "명장이면 돈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해 실제 연락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을 하는 명장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 권수경 목공예 명장은 "유사한 중국 제품 수입으로 갈수록 주문 수량은 줄어들고 판매도 예전처럼 안 되다 보니 생활도 녹록지 않다"고 했다. "명장이 되고부터는 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이름값을 하려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며 사람들은 '명장이라서 비싸냐'며 고개를 돌린다"고 털어놨다.
대한민국명장회 대경지회 임호순 회장은 "지하철 내에 명장 흉상을 제작한 인천시나 '명장의 산책'이란 상징물을 만든 울산시처럼 대구시도 명장 작품 전시관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충호 사무국장은 "산업전선에서 퇴직한 명장이 힘들게 살고 있는 분이 많은 만큼 그들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과 함께 숙련기술지원금의 상향 조정, 연금화시켜줄 것"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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