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언론과의 전쟁

"언론이 대통령 대접을 한 적이 있느냐?"

2003년 5월 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MBC '100분 토론'에서 한 말이다. 현직 대통령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솔직하고 격정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이는 노 전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혐오감과 피해 의식이 대단했다.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조폭적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고, 2007년 경제점검회의에서는 "(언론은) 출처도 없이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니고 대안이 없어도 상관없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인식에 공감할 만한 현실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정권 핵심들의 언론관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었다.

임기 내내 언론, 그중에서도 보수 신문과 전쟁을 벌였지만, 전체 언론을 적으로 돌려놓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보수 신문을 갈구고 무릎 꿇리기 위해, 한편으로는 영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다 보니 무리하고 조잡한 언론정책이 남발됐다. 브리핑제 도입과 기자실 개방, 오보대응팀 구성, 친노 성향의 특정매체 지원, 브리핑룸 통폐합 등등…. 기자들과는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었고, 모두 실패로 끝났다.

참여정부 초기에 언론 단체는 이런 성명을 냈다. '(언론 개혁이 아무리 필요해도) 정부가 언론 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순간, 언론은 그에 저항하며 언론 자유를 위한 순교자로 둔갑할 수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성명만큼 적확한 진단이 없는 것 같다. 참여정부 시절, 말의 성찬과 대의만 난무했을 뿐, 효과나 결실은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생각나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두 사람은 언론에 대한 불만과 비아냥을 여과 없이 감정적으로 쏟아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비주류 출신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트럼프는 주류 언론에 대해 '쓰레기' '가짜뉴스' '사기꾼'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언론보다는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백악관에 기자실을 없애려고 시도했다가 여론 악화로 그만뒀고, 며칠 전에는 자신이 직접 케이블 매체인 CNN을 폭행하는 합성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얼마나 혐오감이나 증오심이 넘쳐났으면 이렇게 유치하고 저급하게 행동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본받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