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대구의 원로시인 목우(木雨) 도광의 시인의 별호다. 그는 세상 버린 연하의 당숙을 일러 "찔레 매운 봄부터 밀짚모자 여름까지/셸리의 『서풍부』를 가지고 다"니며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다"(「강물 속에 우는 아지랑이」) 했지만, 그 또한 갈데없는 아날로그 글쟁이다. 손재간이 젬병이어서 대말 타고 같이 놀던 친구로부터 '기계치'라 불리는 나도 더듬적더듬적하는 손전화 문자 보내기를 그는 거부하며, 문지방 훔켜잡고 한 나달 산고 끝에 낳은 일고여덟 행 꼬질꼬질 손때 묻은 시 한 놈 들고 가, 대구문협 전미연 간사가 달리는 흰 망아지 문틈으로 보는 것 같이 눈 깜박할 새 건네는 타이핑 용지 받아 들고 '허허' 너털웃음으로 손씻이를 대신한다. 바지랑대 같은 키에 모주(母酒)꾼인 시인은 순수하다. 그는 회똘회똘한 모롱이 길이요, 그 모롱이 돌아 나오는 완행열차가 먼 길 길품 파느라 힘들다고 '꽤액' 한 번 내질러 보는 소리요, 유년의 고샅길에 무드럭지게 깔리던 저녁연기 내음이다.
꽁지 편 수공작이듯 사시장철 화사한 한복 차림인 고향 후배 정 여사의 찻집으로 간다. 벽시계가 다섯 점 치길 기다려 우리는 부스스 일어나 소 울음소리 들릴 만큼 가까운 예의 그 술 가게로 향한다. 권커니 잣거니 하다 보면, 여든 다 되도록 건재한 그의 욀총(聰)이 누에가 실 뽑듯 한다. "미당만 한 시인 없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서정주, 「풀리는 한강 가에서」). 먼 데서 인경[人定]이 한참을 운다. 홍어 한 점 씹으며, 숨겨진 반세기 전 전설 하나 끄집어낸다.
동아양봉원 자리에 일본 여인이 쥔인 술집이 있었다. 그미는 인형같이 작고 예쁘장했다. 한창나이에 호감의 표시로 두어 번 집적댔다. 잠깐 지나 이상실 시인이 밖으로 나오라 했다. 가루눈이 날리고 있었다. 무사태평인 그의 안면에 건공(乾空)대매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숫색시의 다홍빛 몸엣것이 보잇한 아랫마기에 묻어나듯, 한 줌 코피가 골목쟁이 숫눈을 스멀스멀 선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상실이의 주먹총(銃)질은 '원일이 좋아하는 여자 넘보지 말라'는 경고였던 거 같아요." 물론 '원일'은 소설가 김원일(金源一)로, 뒷날 가당찮은 만연체 문장으로 목우의 첫 시집 『갑골(甲骨)길』의 권말기를 쓰게 된다. '오늘'이 '어제'로 바뀌는 시간, 우리는 전(廛)드리는 여인과 빠이빠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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