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비자 문제로 방콕서 발 묶여
인도 여행 계획 라오스로 급선회
남송강을 낀 조용한 시골 방비엥
카르스트 지형의 독특한 산 품어
블루라군'탐짱 동굴 등도 볼거리
이른 아침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인도 캘커타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자비자와 전자티켓을 발권 카운터에 내밀었다. 카운터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직원의 어눌한 영어와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인도 전자비자에 문제가 있어 출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전자비자를 겨우 신청하고 완벽하게 출력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점은 여행 계획을 전면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단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숨을 돌린 후 공항에서 예약한 인도 숙소와 국내선 항공권 등을 취소했다. 속 터지는 와이파이 속도 때문에 오후 늦게서야 취소 확인을 받았다. 건너뛴 아침과 점심식사를 공항 내 식당에서 쌀국수로 때웠다.
허기가 사라지자 행선지가 고민이다. 방콕서 갈 수 있는 장소는 많지만 비행기로 5시간 이내 거리는 대부분 가 본 곳이라 마음이 움직이는 나라가 선뜻 떠오르지가 않는다. 와중에 비엔티엔(라오스 수도)에 거주하는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묻는데 기막힌 타이밍이다. 라오스는 필자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언제 가도 늘 푸근하고 편안한 나라이다. 비엔티엔행 비행기를 바로 예약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잠시 잊기로 했다.
스콜 때문에 비엔티엔 공항에서 잠시 선회한 비행기는 왓따이 국제공항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마중 나온 지인 두 분에게 "오늘 밤엔 신나는 장소에서 거나하게 한번 취하고 싶다"고 하자 '카바레' 비슷한 나이트클럽으로 안내했다. 평일이라 손님보다 종업원 수가 더 많다. 서너 테이블을 채운 손님들을 위해 6인조 보컬이 최고의 음악을 뽑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이상야릇한 분위기에 젖어 일행들이 마신 맥주가 30병이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적추적 빗소리에 눈을 뜨니 늦은 아침이다. 딱히 갈 곳도 없고 특별히 봐야 할 곳도 없다. 이번에 틀어진 여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옵션인 모양이다. 시내에 위치한 쌀국수 전문점인 푸동 식당으로 갔다. 여행교과서라 불리는 '론리 플래닛'에도 여러 번 소개된 집으로 라오스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식당이다. 비엔티엔에 올 때마다 호텔 조식은 마다하고 이 식당을 이용한다. 쌀국수 맛이 환상적이라 늘 양푼이 만한 대자를 시키지만 국물 한 방울도 남긴 적이 없다. 저녁에 과음으로 지친 속을 달래려 해장하기에도 그만이다. 식사 후 자주 가는 코스로 'fruit heven'이라는 카페로 갔다.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이곳은 여러 종류의 커피와 생과일주스로 유명하다. 코코넛을 섞은 커피로 입가심하면 오늘 여행은 여기가 끝이라 해도 부러울 게 없다. 최근 중국인들의 막대한 투자와 늘어난 관광객들로 비엔티엔은 물가가 많이 올랐으며 러시아워 땐 교통 체증도 일어난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여유작작하기에는 방비엥이 좋아 보여 방비엥행 버스에 올랐다. 예전보다 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매년 라오스 전체가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방비엥 중심가의 '그랜드 뷰'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가성비가 훌륭한 방을 구하는 경험은 여행자로서 행운이다.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 준다. 숙소 3층 객실에서 바라보는 아침 풍경은 장관이다. 남송강 건너편에 카르스트 지형의 독특한 형태로 길게 이어진 산은 중국 소계림을 연상케 한다. 반쯤 걸린 구름이 더해지면 신들이 내려와 장기를 둘 정도로 아름답다. 예전에는 서양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중국인 등 동양인들이 많이 찾는다.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들어와서 한국 식당이 많이 생기고 마트까지 문을 열었다. 북한식당도 얼마 전부터 영업하고 있다.
방비엥은 조그만 도시로 그다지 볼 것은 많지 않지만 하루 느긋한 일정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지이다. 방비엥에 오면 으레 들러야 하는 듯이 블루라군을 가는데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여느 나라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조그만 웅덩이가 방비엥의 랜드마크가 된 이유를 알 수 없다.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탐짱 동굴로 향했다. 오토바이는 방비엥에서 자유여행객들에게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강 건너편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워 두고 흔들다리를 건너가니 가파른 돌계단이 보인다. 돌계단을 오르며 반쯤 숨이 찰 무렵에 정상 입구에 도착한다. 남송강을 낀 방비엥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암괴석들로 소소한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거꾸로 매달린 남근석은 너무 사실적이라 여성 관광객들의 얼굴을 붉게 만들 정도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니 방안에 이상한 물체가 꿈틀거린다. 뱀이다. 카운터 직원과 함께 뱀을 잡느라 소동을 벌였다. 뱀이 어떻게 방에 들어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평소 숙소에서 침대에 누워 창가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꿈속으로 들어가는데 오늘 밤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암흑천지다. 갑자기 초록색으로 온몸을 두른 주먹만 한 굵기의 뱀이 나의 다리를 감는다. 왼쪽 새끼손가락을 물려가며 필사적으로 몸에서 떼어 낸 뱀을 허공에 던지는 찰나 우레 같은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에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다. 어제 오토바이를 타다가 긁힌 왼쪽 새끼손가락에는 밴드가 가지런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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