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연고를 둔 야구, 축구, 핸드볼 등 구기 종목 3팀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모두 비긴 적이 있다. 지난달 25일 삼성 라이온즈는 한화 이글스와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7대7로 우천 중단 무승부를 기록했고, 대구FC도 이날 강호 전북 현대와 혈투 끝에 2대2로 비겼다. 실업리그인 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는 컬러풀대구(대구시청)가 국내 핸드볼의 맹주이자 정규리그 1, 2위를 다투던 서울시청에 전반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아쉬운 20대20 무승부를 거뒀다.
이들 경기가 모두 일요일이었던 25일 늦은 시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끝났고, 모두 비기면서 이 기사들을 한데 묶어 배치해 보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봤다. 제목은 '대구 무승부의 날'. 이 큰 제목하에 각각의 기사를 배치하면 보기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짜여진 판을 흩트려 다시 제작해야 하는 복잡한 제작상의 문제가 있어 시도하지는 않았다.
물론 잔소리 좀 들을 각오로 편집자에게 부탁하면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썩 내키지도 않았다. 무승부가 주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색무취한 뉘앙스 때문이었다. 무승부 경기는 칭찬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욕을 얻어먹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상대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한 시즌을 놓고 봤을 때도 무승부는 승점이나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그렇다고 영 미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축구 경우 이기면 승점 3, 비기면 1, 패하면 없다. 그래도 축구 무승부는 야구보다는 나은 편이다. 야구는 승률에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승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승률로 우승을 다투는 경우가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무승부의 날', '대구, 무승부'라는 제목을 달기 싫었다. 조금이라도 '이도 저도 아닌' 지금 대구의 처지나 이미지와 오버랩될까 해서다. 부산에 밀리고, 인천에까지 밀릴 처지에서 '제3의 도시'라는 자존심을 부여잡고 악전고투하고 있는 대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었는데도 무승부를 기록한 것처럼,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좋아지거나 나아가는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는 모습이 닮아서다.
그날(25일) 경기는 대구FC도, 삼성 라이온즈도, 컬러풀대구도 모두 다 이길 수 있었던 경기여서 무승부가 더욱 아쉬웠다. 단지 그날뿐 아니라 올 시즌 전반적으로 봐도 아쉬움이 적잖다. 대구FC도, 삼성 라이온즈도 '뭔가'만 넘어서면 선순환의 궤도에 올라탈 수 있을 거 같은데, 될 듯 될 듯한데 안 돼 애를 태우고 있다.
대구FC는 올 시즌 비록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젊은 구단으로 거듭나 좋은 경기를 펼치다가도 승리의 문턱에서 한 번에 급격히 무너지기 일쑤다. 우승 전력은 아니라 하더라도 신구 조화가 나쁘지 않고 기량을 갖춘 우수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시즌 절반이 다 가도록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도 '뭔가'가 아쉽다. 대구의 미래 산업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대구 업그레이드'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실체가 보이지 않는 대구 역시 그렇다.
실력이 없어 이기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저력이 없어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야단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실력이 있는데, 저력이 있는데도 그렇다면 문제다. 그 '뭔가'가 대구FC, 삼성 라이온즈, 대구시가 넘기 어려운 벽이라면 방법은 없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쉬울 수도,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어쩌면 그 뭔가가 대구FC엔 '깡다구', 삼성 라이온즈엔 '집중력', 대구시엔 '과감성'일 수도 있다.
올 시즌 축구도, 야구도 아직 절반이 남았다. 대구FC와 삼성 라이온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그 뭔가를 찾아 넘어서서 남은 시즌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대구는 무승부 도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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