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분홍 고무신①-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대상]

신접살림의 공간, 낡은 방 한 칸과 흙바닥 부엌이 전부였다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다. 1984년 부산 광안리에서.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다. 1984년 부산 광안리에서.
첫아이 돌 무렵, 경남 진주에서.
첫아이 돌 무렵, 경남 진주에서.

"이런 데 안 오게 생겼는데 어쩐 일이우?"

제단을 향해 돌아앉은 여자가, 보지 않고도 보이는 사람처럼 툭 던지는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50대 중반은 되었을까. 화장기 없는 얼굴에 외까풀 눈이 유다르게 작은 그 여자는 조선 중기의 승려 ○○대사의 영을 받았다는 통칭 '앉은뱅이 점쟁이'였다. 어쩐 일이냐 묻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서 점집을 밝히지 않게 생긴 사람의 냄새라도 나는 건지 아니면 난생처음 온 사람의 기를 꺾고 보자는 거드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더 이상의 냉랭한 말은 하지 않고 은방울이 비대칭으로 줄줄이 달린 도구를 집어 들고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차르르 차르르 차르르……."

규칙적인 리듬의 은방울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순간 까닭 없이 들판의 아지랑이 속에 노니는 눈먼 소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삐-비-비-비-- 삐-비-비-비--. 콧노래인 듯 아닌 듯 시름에 겨운 나른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단조로운 음률은 이 세상 소리가 아닌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은방울 소리를 따라간다면 그녀만의 영의 세계가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 때쯤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점집을 종종 찾아온다는 내 친구는 그 여자와 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입술을 약간 내민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었다. 나는 딸 아이 혼사를 앞두고 이래저래 마음이 뒤숭숭하던 차에 친구 권유로 못 이기는 척 따라온 길이었다.

드디어 주문을 마친 여자가 은방울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다시 얼마간의 뜸을 들이고 나서야 이야기의 봇물을 터뜨렸다.

"신랑감은 꽤나 괜찮소. 사람 참 양반이다. 펜대를 들고 먹고사는구먼……. 그런데 와 그리 서둘러 결혼할라 카노, 좀 있으면 더 좋은 사람 나올 긴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듯한 투로 얘기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면서도 겨우 이런 말 들으려고 왔나 싶기도 했다. 아이들은 산 조심 물 조심하라는 하나 마나 한 당부를 했다. 새겨들을 것도 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놓고는 말을 마치는가 싶었는데 그 여자가 갑자기 내리뜬 눈초리로 흘기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애인이 있네요."

그냥 해보는 소리는 아니라는 듯 낮은 목소리에 자신감마저 묵직이 가라앉아 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무어라 대꾸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뜬금없이 애인이라니 당치도 않은 헛소리에 황당할 뿐이었다.

"애인……? 없는데요."

잠자코 앉아만 있던 친구가 반박이라도 할듯 거들었다. 여자는 친구의 얼굴을 째려보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쏘아붙였다.

"아줌마가 어떻게 알아요? 애인이…… 있는걸."

나도 알지 못하는 애인이 있다는 말이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다. 야릇한 기분도 없지 않았다. 점집의 녹색 철문을 열고 나온 나는 기억을 뒤져서라도 애인이란 단어에 조금이나마 합당한 인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딱히 애인이라면 내게 그만큼 비현실적인 존재도 없다고 여겨졌다. 애인을 찾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남다른 영감의 점집 여자가 오랜 세월 내 주위를 서성이는 누군가의 모습을 감지한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다가 내 인생 또 하나의 남자를 찾는 제법 진지한 고민에 들어갔다. 애인이라는 그는 어떻게 생긴 무엇 하는 사람일까. 옛날의 옛날을 더듬어 내려갔다.

온갖 상황이 낯설고 미숙하고 어색한 가운데 강우 씨와 나의 신혼 생활이 막을 올렸다. 1973년 항도 부산이었다. 강우 씨는 결혼이 임박해지자 함께 기거하던 동생 재우와 민우를 위해 인근에 방 하나를 따로 얻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삼 형제가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빛바랜 낡은 한옥의 행랑채 방 한 칸과 옹색한 흙바닥 연탄 부엌 하나가 신접살림 공간의 전부였다. 찬장 밑에 들랑거리는 쥐를 보고 놀라는 각시를 위해 신랑이 고양이 한 마리를 들여왔다. 스물여섯 스물셋, 직업이 없는 시동생 둘이 부엌 일이 서툴기 그지없는 형수에게 밥을 먹으러 오갔다.

첫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오전. 근처에 사는 강우 씨 누이 행자 언니(형님이란 호칭보다는 친근하게 언니로 부르기로 했다)의 부름을 받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래된 동네 수정동 골목길은 실핏줄처럼 얽히어 사람도 땅도 설기만 한 이방인의 걸음을 헤매게 만들었다. 어지러운 골목 한 가닥이 끝나는 오르막 언덕배기에 행자 언니의 집이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대문 앞에 서자 오른쪽으로 망망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린 감정이 가슴께로 올라왔다. 불과 열흘 남짓 전. 눈물 훔치며 헤어진 부모 형제와 미련도 없이 버리고 떠나온 서울 하늘이 무작정 그리웠다. 어머니 이상으로 나를 염려하는 셋째 오빠의 말도 떠올랐다.

"누나가 제일 어른이잖니. 그분 말만 잘 들으면 된다. 점잖고 어질게 보이시더라."

심호흡을 하고 나서 초인종을 눌렀다. 행자 언니가 미소 띤 얼굴로 대문을 열었다. 손아래 올케에게 주는 내리사랑을 의도적으로 자제한 걸까. 한쪽 입꼬리만 올린 미소는 한 손을 내밀어 잡는 의례적인 악수 같았다.

"어서 온나. 한복 입으니 좋네. 지금 시절 아니면 한복 입을 날도 별로 없능기라. 우야든동 부지런히 입고 다니레이."

우리는 안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형제 중 맏이인 행자 언니는 시부모님과 윗대 조상들의 기일을 일일이 불러주고 나서 말했다.

"그것은 네 몫이다."

가늘고 여린 목소리에 철심이라도 박힌 듯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제사 날짜를 수첩에 받아 적었다. 행자 언니는 은회색 찻잔을 차탁에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보레이, 할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는데…… 처음 한 번은 거들어 줄 테이까네 같이 해보면 알끼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부엌문 밖 호두나무 아래서 고양이가 짧게 울었다.

"나비야!"

언니는 부엌으로 통하는 방문을 열었다. 그르렁그르렁, 건넌방에서 노인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흰점박이 검은 고양이가 황금색 눈에 불을 켜고 문턱을 넘어 방으로 올라왔다. 언니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차피…… 올케가 알아야 할 일이 있는데……."

무언가 주저하는 듯한 말투였다. 가라앉은 음성은 끊겼다가 이어졌다.

"큰 머슴아 재우 말이다…… 중학교 때 배구하다가 다쳤능기라…… 그 자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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