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피도시 대구] 대구사람 ♥ 커피사랑

\'커피도시 대구\'를 일군 선구자인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가 과테말라산 명품 원두를 집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제 원두커피가 대중화함에 따라 대구는 단순한 커피도시가 아니라 \'세계적 명품 커피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
> \'커피도시 대구\'를 일군 선구자인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가 과테말라산 명품 원두를 집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제 원두커피가 대중화함에 따라 대구는 단순한 커피도시가 아니라 \'세계적 명품 커피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대구는 커피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커피의 도시이다. 그러나 내부를 속 깊게 들여다보면 위기에 빠진 '커피의 도시'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대구의 커피전문점 숫자는 2천222개로 서울(1만3천553개), 부산(2천867개)에 이어 전국 3번째다. 여전히 인천(1천722개), 광주(1천571개), 대전(1천561개)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2015년 통계에는 대구 커피전문점이 부산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서울보다 더 많은 커피전문점이 있던 곳이 대구였다.

하지만 커피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기호 음료로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지역경제 규모와 인구수에 비례해 커피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4년 2조6천억원 수준이던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원을 넘었다. 서울과 부산의 커피전문점이 급부상하게 된 배경이다. 강릉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시대의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커피축제를 열며, 커피를 자신의 브랜드로 가져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위기와 정책적 무관심 속에서도 아직 대구는 여전히 커피의 '성지'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의 식민지화된 커피 소비시장이 아니라, 저마다 독특한 맛과 멋을 지닌 토종 커피들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도시 대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명품 커피도시 대구'를 향한 과제를 살펴본다.

◆대구의 독특한 공간문화와 커피

대구는 덥고 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가진 내륙도시이다. 이런 지형과 기후는 독특한 공간문화를 낳았고, 이것은 커피 친화적이었다. 사랑방에서 차 한잔하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우리의 일상이었고, 이것이 '커피'와 '카페'로 바뀌었다.

대구 최초의 '커피숍' '카페'는 어디에 있었을까? 1936년쯤 천재 화가 이인성이 중구 아카데미극장 옆에 아루스다방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인들과 교류하기 위한 '신세대' 사랑방을 연 셈이다. 이후 1947년 오랜 기간 동안 대구시민과 동고동락했던 대표적인 다방 백조가 개업을 하면서 대구는 다방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6'25전쟁 땐 외신기자가 '폐허에서 바흐가 들린다'는 놀라운(?) 르포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와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포성이 귓가에 울리는데, 대구 사람들은 다방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당시 다방은 종합 문화공간이었다. 백록다방 구석 자리에선 화가 이중섭이 은지화를 그렸고, 꽃자리다방에서 시인 구상은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대구 최초의 그랜드피아노가 놓였던 자리는 백조다방이었다.

◆커피도시 대구의 부상

1980년대만 하더라도 커피문화는 서울과 부산이 앞섰다. 아무래도 우리보다 앞선 미국과 일본의 커피문화를 먼저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에는 남다른 경쟁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인테리어 업계의 전설이자 대부로 불리는 박재봉 선생(미술가)이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커피숍(카페)의 소프트웨어 구성 요소인 커피의 경쟁력은 서울과 부산에 떨어지지만, 공간 연출이라는 하드웨어는 대구가 앞섰다.

'커피의 성지, 대구'의 역사는 1990년 7월 23일 한 획을 긋는다. 경북대 후문 부근에서 커피명가(대표 안명규)가 창업을 한 것이다. 공장에서 배달된 커피가 아닌, 개인이 직접 로스팅해서 뽑아낸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선보인 것은 우리나라 처음이었다. 세계적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이대점을 내기 9년 전의 일이다. 대구가 신선하고 맛있는 원두커피와 최고의 인테리어를 갖춘, 명실 공히 우리나라 커피의 메카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IMF 외환위기 속에서 2, 3시간씩 줄 서 기다렸다가 커피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래는 시민들을 보며 안타까움과 자부심이 함께 생겨났습니다. 커피 한 잔이 사람들에게 행복과 용기를 줄 수 있구나…."

안명규 대표는 이후 우리나라에 원두커피 문화를 확산시키는 선구자 역할을 맡았다. 2001년 경북대 사회교육원에 바리스타 과정이 생겼고, 2004년부터는 대구보건대, 대구공업전문대, 영남이공대 등 대구지역 전문대학에서 커피 관련 학과들이 생겨났다. 커피숍에서도 자체 아카데미 과정을 개설, '취미' '창업' 과정을 운영했다.

"대구 사람들이 손재주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커피와 관련해 많은 인력이 배출된 것도 커피도시 대구가 자리 잡는 데 한몫했지만, 대구 출신들이 각종 대회를 휩쓸고 대형 커피 브랜드의 핵심 인재로 발탁된 것이 대구 브랜드 향상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토종 브랜드의 창업과 성공도 잇따랐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다빈치, 바리스타B, 핸즈커피, 드 브릿지, 모캄보, 봄봄, 매스커피, 하바나 익스프레스 등이 대기업 브랜드와 당당히 경쟁하고 있고, '커피맛을 조금 아는 남자' '류커피' '30ml 에스프레소'와 같은 개인 브랜드도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글로벌 명품 커피도시로 거듭나라!

"그동안 대구는 커피산업을 청년창업, 일자리 창출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커피전문점은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대구커피의 미래가 없죠. 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지금이야말로 전략과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대구 커피산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품 커피도시, 대구'라는 브랜드는 대구 관광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것. '맛과 멋이 깃든 커피 한잔하기 위해 대구에 왔다가 관광까지 함께한다'는 개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다 보고 커피 한잔하기 위해 경포대와 해운대를 간다'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커피가 아니라, 명품 원두를 사용해 커피 '장인'과 '명인'이 뽑아 내린 명품 커피가 있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커피 명인'장인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명품 커피도시에 걸맞은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카페가 아니라, 대구를 상징하는 건축물 속에 대구의 명품 커피가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우수한 교육 인프라는 대구의 자랑이다. 청년들이 예비 창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커피공방 거리나 커피박물관 등은 기본적 인프라이다.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는 "대구 내부의 소비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커피산업은 이제 한계상황인 만큼 시야를 세계로 넓힐 필요가 있다"면서 "남미'아프리카 등지의 커피농장주 자녀들을 초청해 교육시키고, 대구가 자랑하는 농기계산업을 전 세계 커피농장과 연결하면 새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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