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가 지난 4일 100호 회원을 맞이했습니다. 2010년 12월, 대구 첫 회원이 나온 지 6년 6개월 만의 경사입니다. 매일신문은 이에 민족운동가 서상돈(1850~1913) 선생님과 가상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 회복을 꿈꿨던 선생님은 후손들의 기부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서상돈(이하 서): 국채보상운동 정신이 100여 년 뒤 대구에서 다시 흥하고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눔으로 나라를 구하려 했던 정신이 기부로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만들려는 정신으로 이어져 참 다행입니다. 그때와 지금 닮은 점이 하나 있어요.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국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처럼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도 200호, 300호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삽시간에 퍼진 국채보상운동처럼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도 2010년 12월 1호 회원(이수근 온누리 대학약국 대표) 탄생을 시작으로 불과 6년 6개월 만에 100호까지 달려왔지요.
서: 회원 가입 열기가 아주 뜨거웠더군요. 가속도가 붙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1호 탄생 이후 2011년까지 2명에 그쳐 주춤하는 줄 알았는데 2012년 6명, 2013년 13명, 2014년 14명, 2015년 18명으로 늘더니 2016년 한 해 동안에는 무려 33명이 가입했다고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알려주더군요. 그리고 올해도 절반이 지난 현재 벌써 14명의 회원이 더해졌으니 말입니다.
그 비결이 뭘까 생각해봤어요. 우선 2015년 6월 임기 시작 이후 신규 회원 55명을 가입시킨 함인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숨은 공로자로 꼽을 만합니다. 회원들이 '나눔 전도사'를 자청한 것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정기 모임을 통해 친목을 이어가며 주변 사람의 회원 가입을 독려했다는군요. 그리고 새로운 회원이 탄생할 때마다 소식을 다뤄 나눔의 온기를 지속되게 한 매일신문 등 언론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자: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는 그동안 특별한 기록도 많이 남겼습니다. 선생님께서 몇 가지 꼽아주신다면요.
서: 나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국 여성운동의 효시가 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구 남일동에 살던 7명의 부인이 '남일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해 패물을 국채보상운동에 기부한 것이지요. 그래서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에 등장한 첫 여성 회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13년 11월 가입한 김기호 전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 부회장입니다. 김 부회장은 이듬해 3월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고(故) 박찬수 장군 이름으로 1억원을 또 기부해 '고인 회원'도 탄생시켜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100여 년 뒤 더욱 강해진 여성의 힘을 실감했지요. 현재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여성 회원은 모두 16명이라는데 사실 기부에 남녀 구분이 어디 있나요? 물론 부부 회원도 인상 깊었습니다. 2013년 6월 가입한 한대곤 한창실업㈜ 대표와 이지은 전 대구남구여성단체협의회장 부부가 생각납니다.
기자: 더 나아가 가족이 함께 기부를 실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 맞아요. 2015년 2월 고 정휘진 경동기업 대표 가족 5명이 각 1억원씩 모두 5억원을 기부해 최초의 가족 회원이 됐지요. 2016년 12월에는 익명을 요청한 3대(代)에 걸친 가족 9명이 함께 가입해 전국 최다 가족 회원 기록을 썼고요. 대구 나눔 정신의 상징이 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결국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년 회원도 여럿 탄생했거든요.
서: 2015년 3월이었지요? 이름을 알리지 않은 한 20대 회원이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그해 7월에는 현재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철상 학생이 최초의 대학생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요.
기자: 덧붙이자면 스포츠 선수의 회원 가입도 독특한 기록입니다. 대구 시민이 사랑하는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회원 2명이 나와 모범을 보였습니다. 2013년 당시 류중일 감독이 구단과 재계약한 연봉 일부인 2억원을, 진갑용 선수가 연봉 1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서: 정말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나선 것이지요. 아이부터 노인까지, 직업의 구분 없이 의연금을 냈던 게 국채보상운동과 판박이에요.
기자: 참, 국채보상운동에도 익명으로 의연금을 낸 사람들이 많았다지요?
서: 그것도 닮은 점입니다.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100명 중 20명이 익명 회원이라고 들었습니다.
기자: 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대구가 아닌 곳에 사는 5명도 회원으로 가입해 애향심을 발휘했습니다. 그 밖에 대구 구'군별로는 수성구가 32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달서구 20명, 남구 11명, 달성군 9명, 동구 8명, 중구 7명, 북구 7명, 서구 1명 순이라고 합니다.
서: 애향심도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의 중요한 동력이로군요. 역시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기자: 선생님, 마지막으로 매일신문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서: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으로 소중한 패물까지 기꺼이 내놓았던 국채보상운동은 간악한 일제의 탄압 탓에 좌절됐지만, 그 나눔의 정신만큼은 100여 년 시간이 흐른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어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이번 대구 아너 소사이어티 100호 회원 탄생이 그 생생한 증거라고 힘주어 말해봅니다. 특히 사회 저명인사들이 나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 대구의 장래가 밝다는 확신이 듭니다. '나눔의 도시 대구!' 그 위상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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