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상화와 리쌍

상화는 멋있다. 사진으로 만나는 시인의 모습은 정말 '멋짐'으로 가득하다. 대구에 살면 그런 상화가 남 같지 않다. 길가 담벼락에도 상화가 있고 그냥 '시인의 집'이나 '상화네 집' 하면 안 되나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상화고택'도 있다. 그리고 대구의 핫 플레이스 수성못에도 상화가 있다. '상화동산'이라고, 하얗고 큼지막한 글자 네 개가 수성못 초입에 가지런히 서 있다. 처음 차 안에서 그걸 봤을 때 뭔가 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산의 상화라면 조금 덜 박제되고 조금 더 살아 있을 것 같았다. 멀찌감치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고 이내 다시 그 글자들을 만났다. 망설임 없이 뒤편으로 돌아갔고 붉고 덩그런 광장을 마주한 다음부턴 조금씩 걸음이 빨라졌다. 물 없는 연못가를 지나며 눈길도 바빠졌고 잔디광장에 이르러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랬다. 상화동산에 일단, 동산은 없었다. 그냥 둑길을 한번 걸어 보기로 했다. 사람에 스치고 강아지에 밀려나고 온갖 소리에 부딪혔다. 그렇게 터덜터덜 길 끝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상화를 만났다. 그런데 여느 상화와 다르지 않다. 길 따라 간격 맞춰 상화가 서 있었고 여전히 동산은 없었고 대신 비문(非文) 섞인 커다란 해설판(解說板)이 상상의 길목을 막고 서 있었다. 그렇게 끝나나 보다 했다. 남은 설렘을 털어내고 돌아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반전이 찾아왔다.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누어져야겠느냐?/ 남몰래…/ 사랑은 흘러가는 마음 위에서 웃고 있는 가벼운 갈대꽃인가. 때가 오면 꽃송이는 곯아지며 때가 가면 떨어졌다 썩고 마는가."

갑자기 빗소리가 들렸고 기타가 울었고 불쑥 리쌍이 어른거렸다.

"그대 입술 그대 향기 이제는 모든 게 지겨워지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밤도…./ 그대라는 사랑이란 지독한 그림처럼 멀어져가고 우린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각자의 길을 향하네"(리쌍 곡, 내 몸은 너를 지웠다),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우리 몰래 이별(離別)이 올 줄은 몰랐어라./ 사랑은 흘러가는 마음 위에서 웃고 있는 가벼운 갈대꽃인가. 때가 오면 꽃송이는 곯아지며 때가 가면 떨어졌다 썩고 마는가."(이상화 시, 이별을 하느니)

상화의 시 사이로 리쌍의 음악이 비치고 있었다.

빼앗긴 들의 시인과 힙합의 전설이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새로운 상화를, 살아있는 상화를 만났다. 시대를 건너 같은 리듬으로 서로 닿은 청춘을 만났다. 수성못에서 상화가 리쌍을 불러주기 전까진 미처 몰랐다. 상화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동산이 없어도 다른 무엇을 보태지 않아도 상화는 늘 새롭고 특별하다. 상화는 시 하나로 충분했다. 사진 속 상화의 '멋짐'이 힙합의 스웩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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