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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 예방의학 대가,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

"감염병 대유행 방어? 정부 초기대응·전문가 역할·시민의식에 달려"

우리는 2년 전 메르스로 인해 국가적 재난을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방의학의 대가,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의대 졸업생의 95%가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가 된다. 그런데 다른 길인 기초 의학, 그중에서도 예방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본과 3학년 때 인턴의사로 내과 임상실습을 돌면서 처음 배정받은 환자의 병명이 루푸스병이었다. 일종의 자가면역 질환이었는데 원인도 잘 모르고 진단과 치료도 어려운 질병이었다. 그 환자의 나이가 10대 후반이었는데,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그 후 질병의 원인을 하나라도 더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그러던 중 은사였던 윤덕로 교수님의 "의사는 질병을 고치는 소의(小醫), 환자를 고치는 중의(中醫), 사회와 세상을 고치는 대의(大醫),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는 말씀에 흠뻑 젖어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외교에서도 '예방외교'라는 표현을 쓰는데 가장 고급 외교라 평가된다. 예방의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루는 학문인가?

▶예방의학이 예방주사를 놓는 것은 아니다.(웃음) 예방의학은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역학(疫學) 분야와 직업과 환경에 따른 건강을 연구하는 직업환경의학 분야다. 재작년 메르스 사태 당시 역학조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역학 분야이고, 얼마 전 국가적 문제가 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을 다루는 것이 직업환경의학 분야다.

-예방의학이 굉장히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서 그런지 강 학장은 '마당발'로 소문이 났다.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예방의학은 작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특정 질병의 발생, 진행, 예후와 관계 있는 식이 습관 및 운동 등의 환경 요인, 그리고 개인이 가진 유전적인 요인과 질병 발생 간의 관계를 알아내는 분야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의'과학 분야와 달리 협업을 많이 해야 한다. 마당발로 소문난 것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꼭 전공 때문만은 아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여전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예방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질병관리본부에서 역학조사 업무를 담당했던 전문가로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언제든 뎅기열이나 말라리아와 같은 다른 종류의 전염병이 우리의 방역망을 위협할 수 있다. 대책 수립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스나 신종플루 대응에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던 대한민국 방역 시스템이 메르스 때 왜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는지 복기해 보면 답이 나온다. 첫째,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다. 평택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 질병관리본부가 전문가들을 데리고 신속하게 현장에 가 환자를 제대로 관리를 했어야 했다. 둘째, 보건당국이 "오늘이 피크다. 내일이면 수그러들 것이다"며 국민들에게 정확한 실상을 보고하지 않아 사회적 불신을 키웠다. 셋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신뢰하지 않았고, 서울시는 중앙정부와 정면으로 대립했다. 넷째, 전문가들도 제 역할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심지어 감염내과와 예방의학 사이의 밥그릇싸움으로 비치기도 했다. 다섯째, 언론이 사회적 불신과 불안감에 편승해 지나치게 과장되고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 여섯째, 성숙한 시민의식의 결핍이다. 확인되지도 않은 괴담을 퍼뜨리며 의료진 자녀가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는 편집증적 이기심을 보였다.

-서울대 의대 최연소 학장으로 3연임했다. 선후배 관계와 기존 질서라는 엄청난 장벽이 있었을 텐데 신뢰와 지지를 받은 비결이 있다면?

▶1946년 개교 이래 서울대 의대 졸업생들이 기생충 질환이나 감염 질환의 발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하는 등 보건의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 사이 전국에 41개 의과대학이 생기고 대형병원도 많아지는 등 의료계 환경이 크게 변했다. 그런데 서울대 의대는 관성에 젖은 나머지 변화에 둔감하고 소극적이었다. 그런 문화가 지속되다 보니 언제부턴가 미래 의료 환경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1년 학장 당선은 그런 위기감의 반영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이후 기왕 된 것이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주요 사업들을 마무리하라는 선배'동료 교수들의 도움과 격려로 3연임을 해 올해 말 마무리하게 되었다.

-40년 만에 서울대 의대 교육과정을 개편했다고 들었는데,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미국에서는 유방암 진단을 기계가 한다. 영상의학과 교수는 기계의 진단이 맞았나 틀렸나만 확인한다. 최근 인천의 길병원에서 IBM 왓슨을 가지고 의사들과 비교를 하는 실험을 해 보았는데, 실제 기계가 일부 진단과 치료, 처방에서 앞섰다. 아직은 인공지능(AI)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덜 무르익었다. 하지만 시간문제다. 선 마이크로시스템(Sun Microsystems)을 창업한 인도계 비즈니스맨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향후 20년 내 의사의 80%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 그러면 의사의 역할이 달라진다. 의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진단과 치료를 다 했다. 이제는 의사가 간호사, 약사, 영상기사 등과 함께하는 협업을 책임질 역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커리큘럼에 소통과 리더십 관련 내용을 넣었다. 또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의사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항목도 추가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의료인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글로벌의학센터와 통일의학센터도 만들었는데 어떤 취지였나?

▶195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학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의사를 데려다 훈련을 시키고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우리 의학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100여 명이 가서 세 분 빼놓고 다 돌아왔는데 이종욱 박사가 그중 한 분이었다. 이제 우리가 돌려주자는 취지로 라오스를 상대로 똑같은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다. 통일의학센터는 의료계 차원에서 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아무 준비 없이 남북 간 자유왕래가 이루어지게 되면, 감염병 등 국민보건 측면에서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많은 세균성 질환과 남한의 바이러스 질환이 섞이게 되면 재난수준이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져 사회적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서울대 의과대학이 입시과열의 온상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학사관리 책임자로서의 생각은?

▶사실 의대 쏠림 현상은 국가적으로 큰 문제다. 상위 0.1% 학생들이 전부 의대에 오려 한다. 미래의 의사는 정말 유능해야 한다. 그러면서 배려와 공감지수가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의대에 들어와서 의사가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그래서 저희가 입시에 인성'적성평가를 많이 넣었다. 방을 네 개 정도 만들어 10분씩 평가를 받는 방식이다. 측은지심, 배려, 공감능력 등을 본다. 또한 의대생 중 상당수는 일반 의사가 아니라 기초의학과 미래의학 산업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대, 자연대 등 타 분야와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

-서울대가 명성에 부응하지 못 한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대 전체 업무도 경험해 보았는데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가?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서울대 역사에도 공과(功過)가 있다. 서울대는 1946년 개교 이래 70년간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에도 공헌했고,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사회지도층에 서울대 출신이 꽤 있었다. 예전의 서울대는 출세의 보증수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대학들의 수준이 높아져 서울대의 독점적 우월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아직도 서울대를 입신양명의 사다리로 보고 무조건 서울대에 자식을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들이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서울대는 바뀌어야 한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4년 동안 배운 것으로 평생을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교육도 국가에 필요한 사람을 키워야 한다. 공정과 신뢰, 그리고 소통과 투명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앞장설 사람이 필요하다. 자기 분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인적인 사회성을 가진 사람을 뽑고 배출해야 한다. 서울대가 연구와 교육에서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등 기본에 충실할수록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형 인재 양성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비전과 계획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기계와 기계, 기계와 사람 등 존재하는 모든 객체를 연결하여 행복한 우리네 삶을 만드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가치다. 딱딱한 객체는 연결하다가 부서지고 만다.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협업이 이루어져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조직과 조직의 연결을 매끈하게 할 수 있다. 책임에 기반한 역동성 있는 자율을 교수들과 학생들, 직원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단위조직 및 단과대학에 부여할 때 4차 산업혁명은 우리들 삶 속으로 빨리 녹아들어올 것이다. 미래형 인재란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다. 이러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첨단의 지식을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문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공부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도록 하여야 한다. 융'복합이 대세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전공 하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자는 공학을, 공학자는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연결과 관계망 구축을 통해 새로운 학문영역을 찾아내어야 한다. 서울대는 이런 인재를 키워야 한다.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연결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서울대의 사회적 책무다.

-대단히 혁신적인 발상이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서울대가 정말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강 학장 백부님이 우리 종교계와 사상계의 큰 별이셨던 강원용 목사시더라. 성장 과정에서 백부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텐데 에피소드가 있는지?

▶백부님 탄생 100주년 행사를 보름 전에 했다. 백부님은 일제강점기 때 고초를 당하시고도 일찍이 외국에서 신학문을 익히신 선각자로서 한국 기독교계에 큰 혁신을 일으키셨고, 독재정권 시대에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애쓰셨던 분이다. 제 부친은 내과의사셨는데 네 살 위인 백부님을 거의 아버지같이 모셨다. 고교 시절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부친과 함께 백부님을 뵈러 가서 무슨 공부를 하면 좋을지 여쭌 적이 있는데 그때 사회학을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회학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문과를 선택하였다. 의학에 관심이 많아 고3 때 이과로 옮겨 의대에 진학했지만, 그 영향이 남아 있었는지 의학 중에서 가장 사회학적인 요소가 많은 예방의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은 7월 8일 오전 9시 30분 TBC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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