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하면 떠오르는 첫 단어는 '곤충'이다. 하지만 예천 곤충산업 실상은 세간의 평가와는 괴리가 있다. 해마다 수억원의 예산이 곤충산업에 지원되지만 이를 관리하는 예천군의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부재 속에 예산을 지원받은 농가들은 6개월 만에 곤충사육장의 문을 닫고 있다. 일부 농가들은 곤충 사육을 하지도 않으면서 100% 국비 지원이라는 이점을 악용해 보조사업을 중복 수혜받는 일도 있다. 특히 곤충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일차적인 사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판매처 확보 등 생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곤충산업의 불편한 진실과 함께 전문가 조언을 통해 개선 방안을 찾아본다.
◆곤충사육장지원사업 관리 허술
곤충 도시로 유명한 예천군이 곤충 관련 보조사업 관리에는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억원을 들여 시행한 '곤충사육장지원사업'이 안일한 관리 탓에 개인창고로 사용되는 등 관리감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예천군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 30일까지 '곤충식품 6차 산업화 기반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5억원(국비 100%)을 투입해 지역 내 농가 10곳을 지원해줬다. 농가들은 1인당 3천여만원을 지원받아 82㎡ 곤충사육장 10곳을 지었고, 6천만원을 들여 165㎡ 규모의 공동작업장과 저온저장고를 건축했다. 또 1억1천790만원을 들여 공동작업장에 들어갈 곤충선별기, 곤충빵기계, 사료 배합기, 포장기 등 기자재를 구입했다.
하지만 사업 시행 7개월 만에 농가 10곳 중 5곳이 곤충 사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어떤 농가는 곤충사육장을 지은 뒤 단 한 번도 곤충을 키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농가는 보조사업으로 지원받은 곤충사육용 케이지의 포장조차 뜯지 않은 채 사육장을 개인창고로 이용해오고 있었다. 보조사업을 받기 전부터 곤충사업을 해오던 농가 한 곳을 제외하면 일부 농가들은 보여주기식 소량 사육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지인과 가족의 명의를 빌린 보조사업 부당수급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보조사업 수혜자 중 한 농가는 혜택을 받은 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경우도 확인됐다. 다른 농가는 자신은 물론 자영업을 하는 지인도 보조사업을 받도록 한 뒤 자신의 땅에 곤충사육장 2곳을 지어놓고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천 군민 A씨는 "보조사업을 받은 농가 대다수가 자기 집이나 한우사육장, 버섯재배사 근처에 곤충사육장을 지어놓고 창고처럼 쓴다. 애초에 보조사업 지급 대상으로 선정된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판매처 등 가공사업 개발은 없어
예천군이 해마다 수억원의 보조사업을 통해 곤충사육장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판로는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품 개발과 판로 개척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잉공급에 의한 시장 붕괴가 우려된다는 분석이다.
예천군 등에 따르면 올해 예천군 곤충 사육 농가는 50여 곳으로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식'약용 곤충 생산량도 고소애(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갈색거저리' 애벌레) 11t, 꽃벵이(풍뎅이) 15t 등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곤충가공상품을 판매할 경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내 식용곤충사업도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식용곤충 관련 음식을 판매하는 곳 중 활성화에 성공한 곳은 예천군 읍내에 있는 곤충빵 판매점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에서 손꼽히는 식용곤충 생산농가들조차 판로를 찾지 못해 곤충 사육을 줄이는 형편이다. 과잉물량 탓에 1㎏당 최대 20만원이던 건조 고소애는 몇 년 만에 최저 7만원까지 떨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민은 "예전에는 한 달에 고소애 말린 것이 500㎏ 가까이 생산됐는데 판매할 곳이 없어 현재는 월 100㎏ 남짓 생산해 병원 등으로 납품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제반 지식없이 보조사업을 받아 곤충사업에 뛰어든 농가들이 늘면서 생산되는 곤충의 품질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지역의 한 곤충가공업체 대표는 "일부 농가를 제외하고 대체로 예천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소애의 품질은 대규모로 전문 재배되고 있는 전라도에 비해 색과 품질이 좋지 못하다"며 "지자체에서 제품 개발과 품질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사육장 증가에 보조금을 남발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육보다 제품 개발이 급선무" 권순식 ㈜구미곤충산업연구농장 대표
"곤충산업이 성공하려면 사육보다는 제품 개발이 우선돼야 합니다." 경북지역 식용곤충 분야를 선도하는 권순식 ㈜구미곤충산업연구농장 대표는 곤충산업의 성공 비결을 다양한 제품 개발이라고 손꼽았다.
권 대표는 사업 시작 이전부터 곤충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왔고 창업 1년여 만에 매월 1t가량의 말린 고소애를 가공해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양팀과 함께 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고소애를 활용한 환자식을 제공해 제품의 우수성을 입증했고 중국 곤충업계와 MOU를 체결하는 등 국내외 곤충산업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 대표는 "곤충이 하나의 식품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 소비자의 엄격한 기준에 맞춰 곤충도 전문지식을 갖춘 농가가 위생적으로 대량 사육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며 "무분별한 지원보다는 선도적인 농가를 선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농촌진흥청 등에 따르면 경북지역의 곤충사육장은 지난해 기준 328곳으로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생산량은 사육장 수가 경북의 80%(278곳)에 불과한 전라도보다 적은 실정이다. 전국 식용곤충의 60%가량은 전라도에 위치한 대형 농가에서 생산되고 있다.
권 대표는 예천의 곤충산업이 성공하려면 사육곤충의 다양화와 제품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천은 경북도에서 애완곤충사업특구로 지정받은 곳인데 현재는 고소애와 같은 식용곤충사업으로만 치우쳐져 있다"며 "판로 개척을 위해 단순히 사람이 먹는 식용 분야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자라는 파리과 곤충 동애등에와 같은 익충을 키워 동물용 사료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곤충에 대한 기본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동물들은 이런 거부감이 없어 안전성과 기능성만 입증된다면 더 큰 시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품질개선 없이 생산만 늘려 과잉공급이 발생하면 곤충사육을 주업으로 하는 지역 전문농가들이 흔들리게 되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전체 곤충업계가 망하게 될 것"이라며 "곤충산업을 희망하는 농가들은 시장분석을 통해 판로를 개척하고 농촌진흥청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제품 개발 제도들을 이용해 영양분석과 임상시험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앞으로 곤충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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