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삼성전자 실적이 놀랍다. 매출 60조원에 영업이익이 14조원이다. 하루 2천억원, 매주 1조원을 벌었다. 언론은 찬사 일색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50조원을 가뿐히 넘길 전망이다. 분기 실적이긴 하나 이 바닥에서 신화 그 자체인 애플도, 24년간 반도체 아성을 지켜온 인텔도 '슈퍼 삼성'에 체면을 구겼다.
많은 경제 전문가와 신문은 삼성전자의 상종가를 반도체 호황에서 찾고 있다. 올해부터 세계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슈퍼 사이클'에 올라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전력투구했다. 화성 공장에 26조원을 쏟아부었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평택 고덕지구의 삼성 반도체 공장은 광활하다.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에도 대다수 국민은 공허하다. 초라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한쪽에서 엄청난 부를 창출해도 바로 옆은 쪽박 신세여서다. 곁불이라도 쬐면 몸이 따뜻해지는 게 이치인데도 말이다. '제조업 세계 1위 기업'이 주름잡는 나라에서 돈 구경하기가 더 어렵다. 삼성만 그런가. 지난해 상장기업 순익은 110조원에 육박한다. 기업마다 곳간에 현금이 그득하다. 순환출자제한 대상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00조원이다. 게다가 지난해 국세 수입도 242조6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전년보다 24조7천억원 증가했다. 기업과 정부는 잘 나가는데 경제 3대 주체 중 가계만 유독 냉골이다.
삼성이 세계를 석권해도 일반 국민에게는 아무런 낙수효과가 없다. 그동안 19세기 자유주의자를 닮은 우파 정권들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을 내세워 분배의 불만을 억눌렀다. 그들은 노동으로 번 돈을 투자하지 않고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소비하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그들 말대로 금욕하고 절제하면 모두가 잘살고 경제가 발전할까? 지난겨울, 온 국민이 촛불을 든 이유는 그 주장이 착각이고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누군가. 근면으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럽고 '돈내기' 말만 나와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손에는 푼돈이 고작이다. 소수 부유층을 빼면 대다수는 빚더미다. 가계부채는 1년 새 100조원가량 늘어 1천400조원이다. 금리가 들썩이자 '이자폭탄'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판이다. 금리가 1%포인트 올라도 추가 이자가 9조원이니 왜 안 그러하겠나.
가계가 이리 쪼그라든 데는 경제 활동의 성과물인 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총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69.3%에서 2015년 62.0%로 떨어졌다. 이 와중에 '유리 지갑'이 낸 세금은 지난해 사상 처음 30조원을 넘어섰다. 1년 새 근로소득세가 14.6% 더 걷혔다. 정부는 명목임금 상승과 취업자 수 증가로 근소세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명백히 증세의 결과다. 쥐꼬리만한 월급에도 세금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생계비 번다면 열 일 거부하지 않는 사회다. '아파트 로또'인 주택청약통장이 전체 인구 수만큼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취업 준비생 스펙은 찬란하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언저리의 아르바이트 자리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노후 무대책인 노령인구는 해마다 팝콘처럼 불어나고 있다.
문재인정부 발등에 떨어진 불들이다. 6'19 부동산 대책에 이어 세제 개편안과 가계부채 대책이 곧 나온다. 새 정부는 선거를 치르면서 '소득주도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가계소득을 늘려 성장 문제를 해결하고 불평등도 해소하겠다고 외쳤다.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미국처럼 상위 1%의 부가 하위 20%가 가진 것의 무려 240배를 넘는 사회로 갈 것인지, 골고루 나눠 가지는 사회로 발전할 것인지 새 정부의 정책과 의지에 달렸다. 독일 속담에 '돈이 나가면 정의가 움츠린다'고 했다. 국민 삶을 재생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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