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팀 회의에서 '붉은 광장의 차르(러시아 황제) 병사' 이야기를 꺼내 후배 검사들이 어리둥절해했다고 한다. 내용은 이렇다.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공중전화 부스 곁에 차르 병사 차림의 군인이 늘 보초를 섰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하는지 보초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몰랐다.
그 유래는 제정(帝政) 시대로 올라간다. 차르 정부가 혁명세력이 그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하고 다른 통신수단이 발달해 보초를 둘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그렇게 했다. 그 이유는 실소를 자아낸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 러시아에 반동(反動)의 상징인 차르 병사 복장의 보초가 가능했던 비밀이다.
문 후보자는 이 얘기를 꺼내면서 "검찰도 '차르 병사'처럼 오랫동안 과거 관행대로만 일해왔다"며 "모든 일을 원점부터 의심하고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관행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도 회고록에서 비슷한 일화를 전한다. 그가 1859년 러시아 방문 때 들었다는 얘기다. 어느 봄날 황제(알렉산드르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궁전 정원을 산책하다가 잔디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보초를 발견했다. 황제가 그 이유를 묻자 보초병은 "상관의 명령입니다"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황제가 신하들에게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러다 궁내 하인 한 사람이 그 '비밀'을 밝혀줬다. 예카테리나 여제(女帝, 1729~1796)가 보초가 서 있는 자리에 제철보다 일찍 핀 아네모네 꽃을 보고 아무도 그 꽃을 꺾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에 부하들이 꽃 옆에 보초를 세웠고, 그 이후에도 꽃이 있든 없든 그 자리에 보초 세우기는 계속됐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18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홍수 때 일어났다. 대피 명령을 받지 못한 보초는 그 자리를 지키다 익사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비스마르크의 해석이 재미있다. "러시아인의 천성적 뚝심을 이루는 기본적인 힘과 고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러시아를 경계하는 '정치적 해석'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등장인물과 시대만 다를 뿐 '붉은 광장의 차르 병사'와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는 같다는 점에서 문 후보자의 해석 방식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더 효용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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