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1남 6녀의 둘째 딸로 태어나 시골 벽지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병원비 수발로 가난했던 탓에 영리했지만 일찍 학업을 그만둬야만 했다. 소 먹이기, 모내기, 나뭇짐 하기… 끝없는 농사일이 싫어 열여덟이 되던 해에 도시로 나왔다. 첫 직장은 섬유공장이었다. 그때부터 '여공'의 삶이 시작되었다. 공장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남편이 공장을 차린 후부터는 일손을 덜기 위해 다시 여공이 되었다. 남편의 공장이 도산한 후에는 야간 여공이 되었다. 야간작업은 급여는 조금 더 많았지만 오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해 1년 만에 자격을 얻었다. 이로써 어머니는 30년 만에 여공으로서의 삶을 벗어던졌다. 경제적으론 나아진 게 없었지만 어머니에게 공인중개사라는 '자격'과 '신분'은 여공일 때는 느낄 수 없는 직업적 자존을 느끼도록 해줬다. 섬유공장에서 여공의 존재란 어디까지나 관리직 남성들이 제어하는 기능적 부속품에 더 가까웠던 것이 현실이었니까.
최근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의 아이 양육 때문에 사무실 문을 닫았다. 아들 부부와 딸 부부 모두 나름대로 살림이든 육아든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애를 쓰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메울 수 없는 육아의 빈틈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출근 시간은 어찌 이토록 지엄한 것인지 오전 8시 출근인 직장인 엄마가 9시 등원인 아이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란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며느리와 딸에게 어머니는 "여자도 살길이 있어야 한다", "절대로 직장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한다. '여자'인 당신이 일을 못하더라도 딸과 며느리의 자격, 신분, 직업을 지켜주고자 어머니는 오늘도 세 집을 거쳐, 세 집의 살림을 살고, 네 명의 아이를 돌본다. 지난주가 양성평등주간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의 양성평등은 정부나 사회보다는 어머니가 빈틈을 막아주신 덕에 이뤄진 것이다.
루스 베러클러프가 쓴 '여공문학'에서 '성폭력'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성을 매개로 한 직접적 폭력뿐만 아니라 여성다운 언어와 행동, 여성으로서의 성역할을 강요함으로써 권력관계에서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여자는 공부보다는 살림이, 관리직보다는 여공이, 공인중개소장보다는 육아도우미가 더 어울린다는 식의 발상이 어머니의 자존을 위협했다면 그건 폭력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어머니께 그 점이 죄송하고 부끄럽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나 말이 많은데 어머니는 말씀이 적다. 버지니아 울프는 18세기 말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에 있다고 했다지만 글을 짓지 않았다 해서 우리가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말씀이 없으신 우리 여공-어머니들이 직조해낸 고통과 삶을 읽어내야 할 책임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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