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대구에서 눈길을 끄는 행사가 열렸다. 방천골목오페라축제(6월 15~18일)였다. 방천골목은 전국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김광석길'이 있는 곳이다. 이 축제는 동네 주민과 상인들이 주축이 됐고,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한 행사였다.
나흘 동안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카페 주차장에 설치된 무대 주변은 관광객과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16일에는 '라트라비아타', 17일에는 '카르멘' 공연이 펼쳐졌다. 주민과 상인들도 합창단 일원이 됐다. 한여름 밤의 축제는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멋진 추억을 선사했다.
이 행사를 이끈 사람은 레스토랑 '12키친'의 김상환(63) 대표. 이 동네 주민인 그는 방천골목오페라축제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김 대표는 몇 년 전까지 대학입시 전문으로 유명한 일신학원의 이사장이었다.
유명 학원의 주인이었던 그는 왜 오페라와 요리에 빠져들었을까?
-방천골목오페라축제를 기획한 동기는?
▶지난해 가을 소극장에서 본 오페라 '카르멘'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공연을 기획한 이현 영남대 성악과 교수가 김광석콘서트홀에서 한 번 더 공연을 하겠다고 했다. 이 교수의 얘기를 듣고, 내가 색다른 콘셉트로 골목길에서 행사를 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바람에 방천골목오페라축제 추진위원장이란 감투를 썼다.
행사 기획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이 행사는 골목축제다. 따라서 동네 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를 만들려고 했다. 둘째, 오페라의 저변 확대이다. 대구는 '오페라의 도시'다. 오페라 전용극장이 있고, 해마다 오페라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인구는 3% 미만이다. 시민 누구나 오페라를 편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방천골목오페라축제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준비과정에서 느낀 점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토요일 공연에는 최소 5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골목 일대가 관객들로 꽉 찬 셈이다. 골목에서 실경(實景)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기획 자체가 신선했다고 자부한다. 골목의 오래된 주택과 가게, 그리고 일상의 환경이 그대로 작품의 배경이 됐다.
합창단 29명 가운데 16명을 주민들로 구성했다. 통장, 유리집 주인, 목공소 주인 등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오페라 관람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악보조차 읽을 줄 몰랐다. 이들을 지도하는 음대 교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목공소 주인에게 물었다. "사장님 18번으로 부르는 노래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그는 '무시로'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를 때 악보를 봅니까"라고 물었다. 목공소 주인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요. 악보가 없어도 그 노래를 잘 부르시지요. 그럼 지금 배우는 노래도 열심히 익히면 잘할 수 있을 겁니다"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2개월의 연습이 끝나고 무대에 오르는 날, 이들은 당당한 가수가 됐다.
행사를 끝내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돈'이었다. 축제에 든 경비는 5천400만원이다. 대구시문화재단이 1천만원을 지원했고, 대구은행이 1천만원을 후원했다. 나머지 금액은 지역과 문화를 사랑하는 선량한(?) 시민들의 도움으로 충당했다. 또 배선주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가 의상 60벌을 공짜로 빌려줬다.
-내년에도 방천골목오페라축제가 열리나?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싶다. 출연진에게 개런티를 제대로 지급하려면 사업비가 1억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추진위원들과 의논해 내년 행사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미래의 먹거리는 콘텐츠가 좌우한다. 골목에서 열리는 실경 오페라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5년 뒤에는 5월 한 달 동안 상시 공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
-오페라나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 같다.
▶조예가 깊다기보다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접했다. 클래식, 뮤지컬, 재즈, 가요, 국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들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 악대부 지휘를 맡았다. 고등학교에서는 합창단 활동을 했다. 당시 음악 교사가 바리톤 윤치호 선생님이었다. 특히 고교 시절 감성 교육을 강조하신 교장 선생님 덕분에 음악을 가까이했다. 방과 후엔 서울 종로에 있는 음악다방 '르네상스'를 자주 기웃거렸다.
최근 10년 가까이 가곡교실에서 노래를 배웠다. 특히 이현 교수의 도움이 컸다. 그 대가로 나는 이 교수에게 요리를 가르쳐 줬다. 이 교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그와 나는 '주고받는 사이'다.
-요리는 언제 배웠고, 왜 셰프가 됐나?
▶나는 술에 약한 편이다. 특히 폭탄주는 부담스럽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술과 담을 쌓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와인에 입문했다.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즐기게 됐다.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안 셰프에게 1년 동안 요리를 배웠다. 이탈리아 요리 용어는 물론 성악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 이야기가 나오자 김상환 대표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요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아내가 많이 도와줬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셰프라고 불렀다.
-지인이 홈 레스토랑 이름을 'H602'로 지어줬다고 들었다.
▶10여 년 전부터 집으로 지인을 초청해 풀코스 이탈리아 음식을 요리해서 대접했다. 지금까지 3천여 명이 우리 집에서 식사를 했다. 한 친구가 특별한 의미 없이 당시 내가 살던 효성타운 602호의 이니셜을 따서 'H602'로 작명했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세계육상연맹 집행위원 부인들을 초청해 오찬을 대접했다. 그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우리 집에서 홈파티를 한다는 게 대구에서 꽤 소문이 났다. 당시 김범일 대구시장, 문동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이 외국 귀빈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공식행사인 만큼 부담이 컸다. 행사 1년 전에 제안을 받았는데 6개월 고민한 끝에 하겠다고 했다.
오찬에 배정된 시간은 120분. 외국 귀빈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싶었다. 지인들을 초청해 리허설을 두 번이나 했다. 행사 당일 깜짝 쇼도 준비했다. 테너 최덕술 씨가 빵을 썰고, 피아니스트가 음식을 나르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참석자 누구도 그들이 음악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가마에서 직접 구운 백자 접시를 귀빈들에게 선물했다. 사진 앨범도 만들어 보내줬다. 그날 밤, 김범일 시장이 전화로 감사 인사를 했다.
-레스토랑('12키친') 운영은 언제부터 했나?
▶2015년 7월 문을 열었다. 많은 지인들이 레스토랑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지역에서 파인 다이닝(fine dining'고급 정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연히 요리에 소질이 있고 창의력을 갖춘 젊은 셰프(윤경수 씨)를 알게 됐다. 그와 같이 한다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개업했다.
-요리 철학이 있다면?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으면서 소중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었다.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것이 나이가 들면서 좀 과한 취미로 이어졌다. 결국 레스토랑 주인이 됐다.
음식은 정성이다. 예약을 받으면 그때부터 어떤 요리를 내놓을지 구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드레날린이 넘쳐나는 기분이 든다.
우리 레스토랑의 식재료비는 음식값의 30~40%에 이른다. 채소류는 구룡포의 계약재배농장에서 조달한다. 규모는 작지만 주방의 직원이 7명이나 된다.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개업 후 2년 동안 집에 돈을 갖다주지 못했다. 스테이크의 맛이 떨어지면 자존심이 상해서 사흘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음악과 요리 외에 다른 취미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취미가 있다. 요리를 잘하려면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홈 파티를 할 때 하루 12시간을 서 있게 된다.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조리하고, 설거지까지 하면 꼭 그만큼 시간이 든다. 그래서 운동을 한다. 테니스, 자전거, 등산을 즐긴다. 틈틈이 사진 찍으러도 다닌다.
-중구 삼덕동 일신학원 자리에 이제는 대형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일신학원은 어떤 곳이었나?
▶부친(김동성'87)께서 1969년 한 학원을 인수해 설립한 학원이 일신학원이었다. 46년간 운영했다. '입시 명문'으로 이름을 떨쳤던 게 자랑이었다면, 장학사업을 꾸준히 했던 것은 보람이었다. 또 앞산일신학원 운영 당시 10년간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매년 두 차례 급식봉사를 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김상환은?
▷1954년 4월 6일, 대구 출생
▷학력: 중경고(서울)/ 단국대 중문과/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중국학과 석사(중국경제 전공)
▷주요 경력
-역임: 일신학원 이사장/ 88로타리클럽 회장/ 한중포럼 공동대표/ 대구은행 장학문화재단 이사/ 대구시교육청 인사위원/ 대구시 관광포럼 운영위원/ 대구FC 이사/ 대구경북미식가위원회 운영위원
-현임: 레스토랑 12키친 대표 및 셰프/ 방천골목오페라축제 추진위원장/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상임위원/ 영남중국어문학회 이사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