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하이패스'의 두 얼굴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서는 차가 두 종류뿐이다. 하이패스를 단 차량과 그렇지 않은 차량이다. 하이패스를 단 차는 멈추지 않고 쌩쌩 달려가지만, 그렇지 않은 차는 일단 멈추고 통행권을 뽑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

하이패스를 달지 않았기에 쌩쌩 달리는 차를 부러운 눈으로 봐야 할까? 전혀 부럽지 않다는 운전자들이 꽤 있다. 이들은 시대에 뒤처진 '기계치'인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고답적인 인간'인지 모르겠으나, 하이패스에 대해 손사래를 치는 부류다.

지인 A씨는 매일 한두 차례 고속도로를 오가는 분이다. 단 한 번도 하이패스를 달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에게 돈을 건네면서 한마디씩 던진다고 했다. "수고 많습니다." 그의 말에 어떤 수납원은 살짝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보이지만, 상당수 수납원은 흘려 듣는다고 했다. 그는 그들을 정겨운 이웃으로 느낀다. 요금소 직원과 잠깐 마주칠 때가 고속도로에서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A씨는 낭만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지인 B씨는 수납원의 일자리 때문에 하이패스를 거부하는 유형이다. 좀 편하게 빨리 달리기 위해 하이패스를 장착하는 것은 수납원의 일자리를 빼앗는 짓이라고 여긴다. 수납원 대부분은 중년 여성으로 가계나 아이들 과외비에 보태기 위해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하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고 믿는다.

한국도로공사가 2020년 하이패스로 통행료를 받는 스마트톨링 제도를 도입하면 수납원 6천 명의 일자리는 없어진다. 이들을 다른 업무로 전환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도로공사는 최근 하이패스 이용률 80% 돌파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교통 체증 해결과 경비 절감 차원에서는 자축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일자리를 없애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점에서는 욕을 먹어야 옳다. 법률로 수익을 보장받는 공기업이 경영 효율을 이유로 일자리를 없애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일자리를 없애려고 획책하는 이들은 요즘 말로 '적폐 세력'의 최고봉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톨게이트, 역 등에는 수납원과 역무원이 넘칠 정도로 많다. 일본은 적어도 '인건비 따먹기'로 기업을 운영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인간적인 자본주의라면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은 하이패스 이용을, 그렇지 않은 곳은 일자리 차원에서 수납원을 배치하는 것이 옳다. 필자는 끝까지 하이패스를 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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