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운(悲運)의 낙락장송

'금오산 메타세쿼이어 숲길과 구미 1국가산업단지 내 LG전자 공장 및 구미 문화예술회관 소나무, 구미 초등학교 느티나무의 공통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연을 간직한 길이자 나무이다. 금오산 입구 길을 따라 늘어선 메타세쿼이어 나무는 1960년대 박 전 대통령이 내린 나무를 심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 숲길 주변에는 고려말 충신 길재를 기린 채미정이란 정자가 있어 학창 시절 자주 찾은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박 전 대통령이 1966년 모교 방문 기념으로 심은 나무로, 1991년 세워진 박 전 대통령 동상 곁을 지키고 있다.

메타세쿼이어 나무보다 박 전 대통령의 짙은 사연의 나무로는 소나무가 유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상모동 생가에서 8㎞쯤 떨어진 시내 구미 공립 보통학교(현 구미초등학교)를 오갔다. 20리(里) 그 길을 오가며 뛰놀았던 데가 송정동 현 구미 문화예술회관 소나무 아래였다. 구미공단 내 LG전자 공장 안에 있는 소나무는 학창 시절 소를 매어 두곤 했다는 이야기가 얽힌 숲 속에 있던 여러 소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소를 맸던 소나무 숲은 1970년대 옛 금성사 흑백TV 공장이 건설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270여 년 수령의 한 그루만이 남아 오늘날 '박정희 소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7년 박 전 대통령은 딸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공장을 방문한 뒤 소나무를 둘러봤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당시 찍은 소나무 아래 잔디밭에는 10여 명의 여직원들이 둘러앉아 쉬는 모습으로 봐서 휴식처였던 듯하다. 이후 '박정희 소나무'는 유명세를 타면서 2000년 6월 경북도 지정보호수가 됐다. LG가 관심을 갖고 관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구미를 찾는 방문객에게 소개되고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나무의 시련은 시작됐다. LG가 땅 주인으로 관리하던 시절이 끝나고 소나무가 위치한 공장 부지가 2014년부터 여러 필지로 쪼개진 채 새로운 여러 주인들을 맞으면서 소나무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탓이다. 기업인에게 나무는 그냥 나무일 뿐이니 당연하다. 그나마 경북도보호수인 탓에 구미시가 아직 관리하고 있지만 세월 따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날도 머잖은 듯하다.

40년 전 박 전 대통령 부녀가 함께 찾았다는 소나무의 위상 변화도 부녀의 권력 몰락과 무관하지 않음이 틀림없다. 낙락장송(落落長松), 이는 듣기 좋은 시가(詩歌) 속에 나오는 가락일 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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