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권에서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13개 사건을 다시 조사하겠다는 국정원의 결정은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우선 왜 지금 시점에서 이런 조사에 에너지를 투입하는지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서훈 국정원장이 밝힌 대로 국정원을 미래지향적이고 역량 있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힘을 쏟을 시점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정치 보복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조사 대상에 현 집권 세력이 피해자라고 주장한 사건들이 상당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사건들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조사를 관할하는 조직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이런 의심은 자연스럽다. 13개 사건의 조사는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 산하의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가 맡는다. 그리고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는 노무현정부 때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등 대부분 친노'친문 인사나 문재인정부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조사 방향과 결과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이미 법적 심판이 내려진 사건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법적 심판이 내려졌다는 것은 진실 규명도 끝났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다시 조사하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 충성한 사람을 솎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3개 사건의 재조사는 '정치 개입 금지'라는 대국민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사 대상 자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 소속 이철우 국회정보위원장은 "서 원장이 정치 개입을 안 하려고 적폐를 청산하려 한다 했는데, 결국은 정치에 휘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틀리지 않은 소리다.
이런 식이라면 문재인정부는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과거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국정원은 과거 사건 재조사에 시간과 힘을 낭비할 게 아니라 조용히 정치 개입 금지라는 개혁의 완성에 진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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