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치벤학원, 42년째 경주 수학여행

일제 강점 반성하는 마음으로 시작, 韓 안보 우려에 김석기 의원 설득 명맥 이어

일본 치벤학원(智辯學園)은 매년 경주로 수학여행을 왔다. 올해까지 42년째다.

치벤학원은 일본의 나라현과 와카야마현에 위치한 학교이며, 일제 강점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지난해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경주를 방문했다. 1975년 학생 344명을 시작으로 매년 500여 명 규모의 수학여행단을 경주로 보내고 있다. 치벤학원이 수학여행지를 경주로 선택한 것은 일제강점기 35년간 한국인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 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 때문에 편리한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고 매년 한국으로 오고 있다. 지금까지 수학여행을 다녀간 학생 수만 2만여 명이 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통이 올해 깨질 뻔했다. 웬만한 자연재해나 한국 내 정국 불안에도 계속됐던 치벤학원의 경주행 전통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국 내 안보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수학여행은 홋카이도(北海道)로 대체됐다.

깨질 줄 알았던 전통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학원 관계자들을 설득한 김석기 국회의원(경주) 덕분에 다시 이어졌다. 한일의원연맹 상임감사인 김 의원은 희망 학생 13명을 모집해 명맥을 이어갔다. 김 의원은 "수학여행은 한'일 양국의 민간외교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 양국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 전통은 일본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었다. 이런 전통이 지켜져 다행"이라고 했다.

나라와 와카야마 치벤학원 고교에서 경주행을 희망했던 학생 13명은 지난 9일 배편으로 부산항에 도착해 경주를 방문했으며 13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치벤학원 후지타 기요시 이사장은 "42년간 계속된 인연을 끊을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를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며 "이번 여행은 단순한 수학여행이 아니라 일본이 고통을 준 데 대해 사죄하는 자리다. 전통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양측은 이번 일을 계기로 내년부터는 수학여행과 같은 단발성 교류보다는 단기 유학'연수, 토론회, 홈스테이, 문화체험 등 교류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기로 합의했다. 특히 지난해 나라 치벤학원 고교는 고시엔(甲子園)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야구의 명문학원인 만큼 야구 명문인 경주고와의 친선경기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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