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우표 발행 번복, 유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이하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국내에서 합법적 절차를 거쳐 결정된 기념우표 발행 계획이 전면 철회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업을 추진한 우정사업본부는 전 정부 때 스스로 내린 결정을 정권 교체 직후 뒤집음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기념우표 발행을 '이념 전쟁' 속으로 스스로 밀어 넣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이던 지난해 5월 우정사업본부는 구미시의 신청을 받아들여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을 전격 결정했다. 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기념우표 60만 장을 찍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업은 우표발행심의위원회 회의 결과 참석 인원 9명 만장일치 찬성 의견으로 발행이 결정났다. 그런데 최근 우정사업본부는 이 계획을 재심의하기로 하고 심의위 표결에 다시 회부했다. 시민단체 반발 및 여론 악화를 이유로 댔다. 이달 12일 심의위원 12명이 참석한 재심의에서 철회 8표, 발행 3표, 기권 1표 결과가 나왔고 발행은 결국 취소됐다.

우정사업본부는 법적 절차를 거쳤다고 해명하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5월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이 결정났을 때에도 시민단체 반발 등 논란은 드셌다. 그러나 당시 우정사업본부는 "절차상 문제가 없어 발행을 취소할 수 없다" "정치적 시비로 우표 발행이 번복될 경우 독립적인 우표발행심의위의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다"며 발행 의사를 고수했었다.

지난해 5월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정권이 바뀐 것뿐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입장이 돌변한 것을 놓고 정치적 결정이라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우정사업본부가 '독립성' 운운했던 우표발행심의위도 상반된 표결 결과만을 놓고 보면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 번복은 공과(功過)가 있는 전직 대통령의 기념우표를 발행하느냐 안 하느냐 차원을 넘어, 국가기관의 원칙 및 신뢰에 관한 문제다. 국가기관의 행위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권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말과 행동이 180도 달라질 수는 없다. 이러니 '바람 불기 전에 납작 엎드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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