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픽사 신작 애니 '카3'

부르릉~맥퀸이 돌아왔다

전설의 스타 레이싱카

후배들에 밀려 고전하지만

세월의 흐름 받아들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

재치 넘치는 설정·대사

기막힌 캐릭터 움직임

유쾌·상쾌·통쾌 '스피드의 귀환'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등 명품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적으로 탄탄한 팬층을 형성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올해 신작 '카3: 새로운 도전'(13일 개봉)을 내놨다. 앞서 두 편의 '카' 시리즈를 통해 잘 알려진 캐릭터 맥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번에도 신나는 한판 레이스를 펼친다. 시리즈 첫 편인 '카'의 공개시점이 2006년.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금 '카3'는 전성기를 지나 퇴물이 된 왕년의 스타 레이싱카 맥퀸이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맥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카'의 팬들을, 또 픽사의 팬들을 보듬어주고 '힐링타임'을 선사한다. 픽사는 지난해 이미 창사 30주년 기념작 '도리를 찾아서'를 발표하고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을 끌어냈다. 현재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도 몰려드는 관람객들 속에서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혁명에 가까운 기술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과시하며 세계를 뒤흔든 회사. 이처럼 픽사라는 타이틀을 설명할 만한 수식어는 넘쳐난다. '카3'의 개봉에 맞춰 픽사가 남긴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카', 뛰어난 완성도로 호평 세례

'카' 이전에 자동차를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각종 로봇과 동물, 인형과 심지어는 사람 흉내 내는 스펀지까지 나와 애니메이션계를 평정한 뒤였다. 그러니 자동차를 기막히게 의인화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무기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애니메이션 '카'가 세상을 흔들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일단 타깃 선점 능력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카'는 잘 빠진 차체를 이끌고 놀라운 속도를 구가하며 세계 최고 레이싱 스타로 군림하는 라이트닝 맥퀸을 주인공 캐릭터로 내세워 스피드와 성능에 열광하는 상당수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남성'의 범주 안에는 성인과 아이, 또 청소년이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고 '카'가 '남성'들만을 위한 애니메이션도 아니었다. 귀엽고 친근하게 묘사한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여성'들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주스나 맥주를 들이켜듯 오일이 든 잔에 빨대를 꽂아 마시고, 바퀴를 손 대신 사용하며 헤드라이트를 눈처럼 깜박이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관객의 시선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오만방자한 주인공 맥퀸이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에피소드를 내러티브의 중심에 배치해 성별과 나이 구분없이 폭넓은 층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카' 1편을 내놨을 무렵, 픽사는 이미 전작들의 성공으로 '애니메이션계의 장인 집단'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카' 역시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 또 놀라운 기술력으로 배경과 소품 및 빛의 흐름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뛰어난 완성도를 선보여 칭찬 세례를 받았다.

◆'카3', 한층 성숙한 주인공 맥퀸 눈길

2011년에 공개된 '카2'는 1편에서 조연 캐릭터로 등장했던 시골 견인차 메이터의 분량을 주연급으로 키워 또 다른 재미를 줬다. 주인공 캐릭터 맥퀸과 다를 바 없이 큰 비중을 둬 서로 우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렸고, 시골에서 도시로 나온 견인차 메이터가 본의 아니게 중요한 첩보전의 중심에 서게 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웃음과 함께 긴장감까지 유발했다. 자동차들이 서로 얽히면서 펼치는 액션신이 특히 일품. 카체이싱을 보여주는 건 물론이고 바퀴의 과장된 움직임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액션신을 만들어내 감탄사를 끌어냈다.

시리즈의 명맥을 잇는 '카3'는 다시 한번 맥퀸 캐릭터를 중심에 내세웠다. 항상 정상의 자리를 지키던 스타 레이싱카 맥퀸의 나이 든 모습을 보여준다. 극 중 맥퀸은 최신 기술을 구사하는 후배 레이싱카들에 밀려 고전하고 결국은 은퇴 위기에 몰린다. 영화 '록키 발보아'에서 은퇴한 복서 록키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또 살아갈 의미를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링에 오르는 것처럼 레이싱카 맥퀸도 훈련을 거듭하며 재기를 노린다. 그러면서 '카3'는 맥퀸이 비현실적으로 다시 성공하기보다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또 한 번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자칫 교훈적인 내용처럼 들리지만, 언제나 그렇듯 교훈을 담되 그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 지루하고 따분한 흐름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재치 넘치는 설정과 대사, 기막힌 캐릭터들의 움직임 속에 교훈을 묻어두고 내러티브의 흐름 속에서 관객이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게 유도한다.

◆어른을 위한 만화, 아이들도 열광하는 만화

성별이나 나이대와 무관하게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사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어른들을 열광하게 하는 '어른들을 위한 만화'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토이 스토리'나 '니모를 찾아서' '굿 다이노' 등의 작품은 아이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카' 역시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픽사의 작품 중에서도 난도가 '상'급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많다. '업'이나 '라따뚜이' '월-E' 등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80% 이상의 이해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월-E'의 실험성과 예술성, '업'의 메시지와 감동을 아이들에게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결국 이 작품들의 타깃이 아이들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종 '몬스터 주식회사'를 두고 아이들이 볼만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리고 싶다. 기업문화와 회사원들 간의 경쟁구도, 약간의 경제 흐름까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저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 캐릭터 설리와 마이크가 귀엽고 재미있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기를 강요한다면 아이들이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설리와 마이크 캐릭터 인형을 손에 들고 다닐 수는 있어도 '몬스터 주식회사'의 내용과 유머를 이해하는 건 그들이 성장한 후가 될 수밖에 없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서도 그 안에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아낸다는 점, 그래서 아이들로 하여금 박수하게 하고 어른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자라 다시 찾아보면서 그 내용과 의미를 다시 한번 이해하고 되새길 수 있게 만드는 만화영화.

이 정도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구축할 수 있는 최대의 입지다. 때론 힘을 실었다가 때로는 적당히 힘을 빼고 가벼운 톤으로 접근해 새롭다는 느낌을 주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취향에 따라 각 작품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완성도 면에서 누구도 픽사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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