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피터 갤리슨 지음/ 김재영'이희은 옮김/ 동아시아 펴냄
'물체를 본다'는 것은 그 물체가 반사하는 빛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는 30만㎞/초다. 일정 거리 떨어진 물체가 보낸 빛은 광속으로 이동해 관찰자에게 도달한다. 그래서 관찰자가 물체를 인지하는 순간, 빛을 반사하던 그 물체가 아니다. 관찰자의 위치와 물체의 위치 사이엔 시간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는 일정하고 한 좌표계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한 가지로만 설명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동시성이 성립하려면 좌표계 내 시계가 동기화해야 한다고 했다. 광속 오차로 시계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외국 여행자들은 도착 전후 시계 침을 조정한다. 현지시각에 맞게. 이렇듯 '위치에 따라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 다시 말해 경도에 따라 지구의 시간을 24개로 나누고, 경도가 같으면 표시되는 시각이 같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다. '시간의 동시성'이 과학적'기술적으로 실현된 예다. 누구나 알지만 두 과학자의 논증이 바탕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제국의 야망과 형이상학적 관념이 물리학을 혁신
과학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피터 갤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상대성 이론이 시계와 지도를 통일하는 데 미친 영향을 두 과학자의 생애로 풀어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는 1997년 봄, 갤리슨이 북부 유럽 기차역에 늘어선 시계를 바라보면서 만들어졌다. 시침, 분침, 초침이 모두 똑같이 똑딱거리는 시계를 보면서 동기화를 떠올렸고, 그의 '시간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초의 시계는 짧게는 15초, 길게는 분침이 차이가 날 정도로 오차가 컸지만, 19세기 말의 사정은 달랐다. 항해할 수 있는 곳, 철도가 놓이는 곳으로 무역이 확장되면서 국가 간 자존심 싸움이 전개됐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를 다룬다. 철도와 전신으로 지배영역을 넓히려던 국가들이 벌인 총성 없는 전쟁 이야기다.
1875년 미터법 규약은 공간의 표준이 규약으로 정해진 예를 보여준다. 도량형 체계의 통일은 시간의 표준화, 시계의 동기화에 대한 제안으로 이어진다. 시간을 가지려는 열강의 노력은 해저전신케이블을 타고 공간으로 확장한다. 신대륙의 시간과 런던, 파리, 워싱턴의 시간차를 측정하려던 강대국들은 원거리의 동시성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전기적 세계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시간 좌표화를 통한 제국주의 열강의 어두운 욕심은 본초자오선 싸움에서 잘 드러난다. 경도 영점 중심지를 둘러싼 싸움은 영국의 승리로 돌아간다. 그리니치와 파리, 즉 영국과의 싸움에서 대패한 프랑스에서는 이 '억울한' 시간규약을 과학기술로 개혁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푸앵카레의 지도가 의미 있는 것도 이때부터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 두 과학자의 생애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푸앵카레는 좀 낯설다. 푸앵카레는 프랑스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이자 프랑스 경도국장이다. 그는 프랑스 경도국에서 일하면서 전신을 주고받으며 경도를 측정하고 시계를 좌표화하는 일을 하며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흔들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기 7년 전의 일이다. 1898년 푸앵카레는 '시간의 척도'라는 논문을 통해 시간의 동시성과 지속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견해에 맹공을 퍼부으며 규약주의를 강조했다. 동시성이라는 개념과 전송시간에 대한 고려를 담은 이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기본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아인슈타인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빛의 매질로 '에테르'를 가정한, 잘못된 가설을 지키려던 푸앵카레와의 차이점이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논문을 발표하던 시절, 그는 스위스 베른의 한 특허심사관이었다. 저자는 그의 상대성이론과 시간혁명이 세상과 동떨어진 외로운 과학자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기 좌표화된 동시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던 시기에 기계장치에 둘러싸여 있었던 그의 환경이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갤리슨은 아인슈타인이 푸앵카레의 논문을 읽었을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1905년 논문에 각주를 넣지 않았다. 이후에도 푸앵카레의 이름은 피했다. 서로, 특히 아인슈타인은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이들은 기술'철학'물리학의 교차점에 놓여 있던 20세기 초 좌표화의 증인이자 경쟁자였다.
◆상대성 이론, 시간혁명은 우리 삶에
상대성이론을 모르는 이는 많지만, 이론은 이미 실생활에 실재한다. 중력장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의 대표적 예측인 동시성의 상대성, 시간의 지연, 길이의 수축 등은 추상적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의 시간혁명은 여전히 경쟁적 싸움을 낳고 있고 제국주의, 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논쟁 속에서 '세계적인 시간'에 대한 숙제만을 남겼다. 특허심사관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시계 속에 세계는 여전히 멈춰 있다. 책은 실험과 이론을 설명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은 지식과 권력의 교차점에서 출발한 지도와 시간의 이야기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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