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야생화 일기/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제프 위스너 엮음/배리 모저 그림/김잔디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
월든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자급자족 생활을 한 일을 쓴 책 '월든'의 지은이이자 자연주의 철학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야생화를 사랑했다. 그가 세계적 고전 '월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야생화 덕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로는 야생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 책 '소로의 야생화 일기'는 소로가 자신의 고향인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콩코드 숲과 초원, 늪을 누비며 동물과 식물, 날씨와 이웃을 관찰하며 쓴 일기에서 발췌한 것을 묶은 것이다. 야생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시시각각 변모하는 야생화의 모습, 야생화를 관찰하며 느낀 사유의 단편들로 구성돼 있다.
소로는 33세가 되던 1850년부터 체계적으로 식물을 관찰했다. 권위 있는 식물학 책을 두루 탐독하고, 분류 체계를 공부했으며,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식물일지라도, 콩코드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을 알고자 했다. 야생화 관찰기이지만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섬세한 묘사와 깊은 사색이 녹아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썼다"
소로는 "야생화는 단 한순간의 햇빛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날씨에 감사하는 것은 인간보다 꽃이다"며,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전력을 다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피워내는 야생화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소로는 "야생화 관찰에 몰두하느라 나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이다"고 고백할 정도로 야생화를 찾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소로는 자신이 자주 다니는 길과 숲에서 피고 지는 꽃들뿐만 아니라 홀로 외롭게 피고 지는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 빗속을, 철둑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었으며, 꽃이 필 만한 장소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캐나다매발톱꽃과 버지니아범의귀가 자라는 코낸텀 절벽 역시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소로는 "내가 사랑하는 것만 적었다. 세상에 대한 애정만 적었다. 그러자 야생화에 대한 기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식물학자 소로의 면모 느낄 수 있어
독자들에게 소로는 자연주의 철학자, 시인이자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식물학자로서 소로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1852년 9월 13일, 소로는 이렇게 썼다.
"다양한 색조의 파란색 아스터 꽃, 촘촘히 모여 자라는 작은 흰색 아스터 꽃이 길가에 그 어느 때보다 무성하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 모든 꽃은 살아 있는 한 정직하고 빠르게 자기 몫을 다한다. 자연은 단 하루, 한순간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중략) 식물은 1년 내내 기다리다가 스스로 준비를 갖추고 대지가 준비를 끝낸 순간 지체 없이 꽃을 피운다. 순식간에 일이 벌어진다. 게으른 인간의 마음속에서 9월의 평화로운 적막은 공장이 윙윙 돌아가는 소음으로 들린다. 일을 함으로써 이 공기 속의 소음을 잠재울 수 있다.(하략)"
이 책에는 수련, 물망초, 접시꽃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꽃들도 등장하지만, 퍼플 베르노니아, 로툰디폴리아초롱꽃, 필브리아타잠나리난초 등 생소한 꽃들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식물 용어만 500여 개에 달하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꽃들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본문의 식물 용어들은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의 감수를 거쳐 '국가표준식물목록'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다.
◇계절 만끽할 수 있도록 날짜순으로
이 책의 첫 번째 글은 1854년 3월 4일의 글로 "지난주에는 눈이 아주 빨리 녹았다"로 시작한다. 소로는 1850년부터 1860년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지만, 이 책을 엮은 제프 위스너는 계절의 흐름과 야생화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소로가 쓴 일기를 연도순이 아닌 날짜순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1850년 6월 어느 날의 일기보다, 1854년 3월의 일기가 앞에 배치돼 있다.
책에는 소로의 일기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호평받는 화가인 배리 모저가 그린 야생화 일러스트 200여 점을 수록하고 있다. 처음 접하는 낯선 꽃일지라도 그 생김새를 관찰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로가 식물 관찰을 위해 걸었던 지명과 지도를 수록했으며, 식물 애호가들을 위한 식물용어 사전도 부록에 싣고 있다.
◇고전 '월든'과 닮은 야생화 관찰기
소로는 주변 생명체들과 자신을 조화시킴으로써 식물의 생태뿐만 아니라 각 식물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자기감정의 변화와 철학적 사색도 기록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야생화 관찰기이지만, 곳곳에서 소로가 지은 세계적 고전 '월든'의 향기가 묻어난다. 가령 1854년 9월 19일 일기는 '월든'에서 발췌한 글이라고 해도 어색할 것이 없어 보인다.
"오늘 오후에 해야 할 작문 강의와 그 강의 때문에 올겨울 외국에 나갈 일을 생각하면, 여태껏 누려온 무명과 가난이 얼마나 이로운지 깨닫게 된다. 나는 거리낌 없이 화려한 자유를 누리며 왕 못지않게 당당하게 생각했고 시적인 여가를 즐기며 한 해를 보냈다. 나 자신을 자연에 맡겼다. 셀 수 없이 많은 봄과 여름과 가을, 겨울을 그 속에서 숨 쉬는 것만이 전부라는 듯 살아왔고 계절이 마련해준 모든 영양분을 흡수했다. 예를 들어 나는 몇 년을 꽃과 함께 살았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꽃이 언제 피는지 관찰했다. 가을 내내 나뭇잎이 어떻게 색이 변해 가는지 관찰할 여유가 있었다."
▷지은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강의, 목공, 석공 등 시간제로 일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을 쓰며 보냈다.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2년의 삶을 기록한 '월든'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이 됐다. 1862년 5월 6일 결핵이 악화돼 생을 마감했다.
46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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