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995년 4월 28일에 무슨 일이 있었어?"
이제 열여섯이 된 딸아이가 이번 주 독서토론 책을 찾다가 뜬금없이 물었다.
"이번 주에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이걸로 독서토론하는 거 맞지? 그런데 책에 이런 말이 적혀 있어."
95년 4월 29일
바람 한 점 없고 하늘이 찌뿌듯하다.
잔인한 4월을 넘기기 위한 홍역일까….
어제 천재(天災)가 일어났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수 있는 마음이 내게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딸아이의 말을 듣고 1995년 4월 28일을 검색해 보니, 그날 대구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 폭발 사고가 있었다. 1교시 수업 중 갑자기 교수님이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던 일과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는 말과 별 탈 없이 일상을 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가를 고민하던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다.
지금도 책을 사면 습관적으로 귀퉁이 어딘가에 책을 산 날짜와 그때의 기분, 읽고 난 후의 소감을 적곤 한다. 딸아이가 발견한 낙서는 1995년 처음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쓴 낙서이리라.
10년이 흘렀다. 학생들이 찾아왔다. 학교 인근 공공도서관에서 독서논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번에 제시된 책이 '당신들의 천국'이란다. 학생들은 대회에 나가고 싶은데 아무리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칭얼거리는 학생들을 선생님과 같이 독서토론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거라고 달랜 후, 책장 한 귀퉁이에서 누렇게 바랜 '당신들의 천국'을 찾았다. 까맣게 잊었던 낙서를 보는 순간 스무 살의 나와 친구와 교정이 떠올랐다.
2017년. 세 번째로 '당신들의 천국'을 만났다. 20년 전 학생으로, 10년 전 교사로 다시 10년이 흘러 엄마로 만난 '당신들의 천국'은 그때마다 다른 울림을 주었다. 네 번째 '당신들의 천국'을 만날 때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일까.
올 초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서적 도매상이 부도를 냈다는 소식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책을 사고, 그 책에 추억을 남기고 다시 추억을 대물림하는 설렘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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