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교육, 부모됨의 길을 묻다] 너의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몰랐다

"너의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몰랐다. 미안하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bob)'의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한 말이다. 마약중독으로 일탈에 빠진 아들을 아버지는 포기했다. 버려진 아들은 유일한 벗이자 위로자인 길고양이 밥과 함께 주리고 헐벗은 삶을 산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새 가족과 반듯하게 살게 되지만 반듯하게 사는 만큼 아들을 돌볼 수 없게 된다. 아들은 길거리 악사로서, 가판 잡지 판매원으로서 재활의 노력을 하지만 쉽지 않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은 후에 마약을 끊은 아들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는다. 그때,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너의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몰랐다. 미안하다."

우리 학교에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있다. 어린이 수준을 갓 벗어나 청소년이란 단어에 무게감을 느낄 정도의 중학생들이다. 대체로 공부에는 기본적인 부담을 갖고 있지만 마냥 즐거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부모와 교사로부터 적절한 보호와 간섭, 교육과 통제를 받으며 가정과 학교를 생활의 기본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얼핏 보면 대다수가 비슷비슷한 꿈과 희망, 일상과 습관을 가진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명 한 명의 개별적인 여건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습관이나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놀라게 된다. 화성에서 온 아이 옆에 금성에서 온 아이가 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가기 위해 한 문제도 놓칠 수 없는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시험을 치는 아이 옆에 학교가 일찍 마친다는 이유 하나로 시험기간을 학수고대하는 아이가 있다. 한 번씩 부모님의 손편지와 함께 정성껏 싸준 '사랑의 도시락'을 먹는 아이 옆에 주말이면 학교 급식도 없어서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두 끼를 이어 먹는 아이가 있다. 온종일 움직여도 지치지 않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 옆에 표정을 한 번 밝게 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 물론 극단적인 예를 대비하였지만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도 다 나름의 욕구와 관심사가 있어서 아이들은 들판에 흐드러진 꽃들보다 다채롭게 피어난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다채로움에 비해 부모들의 아이에 대한 희망, 양육 태도, 대화 방식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학부모의 직업, 종교, 취향을 불문하고 그렇다. 학업 면에서 우수하거나 열등하거나, 경제적으로 풍요하거나 불우하거나, 생활면에서 건강하거나 심약하거나 차이가 별로 없다. 학부모의 일치된 희망을 요약하면 그것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학부모의 이러한 희망은 매일매일 인생을 몸으로 직접 살아온 삶의 경험에서 나온 절절한 바람이다. 따라서 이 희망은 정당하고 절실하다.

그러나 경쟁의 영역과 자녀의 여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이 희망은 황당하다. 황당한 희망의 배경은 부모세대가 자녀세대보다 배우는 내용과 방법, 그리고 경쟁의 영역과 정도가 일치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표준에 따라 살고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 표준은 사라졌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부모의 역할, 모두에게 먹히는 가르치는 방법은 더 이상 없다. 심지어 아이에게 맞는 맞춤형 기존 세상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아갈 힘이 필요할 뿐이다.

학교에서 아이는 자신을 감추면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교사를 따르지 않는다. 교사 노릇 어렵다. 가정에서 자녀는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면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다. 부모 노릇 힘들다. 영화 속의 주인공 아버지도 표준형 학부모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아들의 아버지'가 되기에는 그렇게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너의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몰랐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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